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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 중 가장 가 보고 싶던 나라: 스위스

by 어진윤 2024. 4. 20.

유럽연합이 탄생한지 사반세기가 다 되어 가지만 스위스는 유럽연합에 합류하지 않았다. 내게 제일 가보고 싶은 유럽의 나라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늘 상위권에서 날 고민케 했던 스위스를 드디어 가게 된 것이다. 유럽연합 소속은 아니지만, 같은 유럽권이라서 그런지 비행기표는 막판에 구입한 것치고는 굉장히 저렴했다. 원래는 더 싼 티켓인데, 산티아고 순례여행 후에 어디를 갈까 막판까지 저울질을 하다가 스위스를 택했다. 여행을 할 때에는 역시 대도시에서 대도시로 움직이는 것이 가장 저렴한 티켓을 구할 수 있는 길인 것 같다. Santiago De Compostela는 대도시가 아니기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훨씬 먼거리에 있는 대도시에서 출발하는 비행기 티켓이 더 저렴한 듯 했다. 어떤 일을 할 때 제정적인 이유를 제 1순위에 두고 결정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기에, 더 저렴하게 여행을 할 수 있었어도 스위스로 가는 것으로 계획을 하였다. 이렇게 결정한데에는 날씨도 한몫을 했다. 그 당시 아직 3월 중순이었는데, 유럽의 여기저기의 날씨를 확인해 보니 내가 유럽배낭여행을 하려는 계획에는 스위스로 먼저가서 이탈리아로 내려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 같았다. 

 

스페인에서 비행기를 타고 스위스로 가는 하늘 길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스위스의 제네바는 스위스의 가장 서쪽에 위치해 있었기에 비행기가 떠 있는 하늘은 아마도 프랑스 상공이었겠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저 산이 그 유명한 몽블랑 산인가? 저 산맥이 말로만 듣던 알프스 산맥인가? 하면서 연신 사진과 영상을 찍어 댔다. 난 비행기 여행을 유난히 좋아했다. 그리고 어린시절에는 항상 비행기 창가에 앉는 것을 선호했다. 창밖의 경치를 보면서 조용히 생각하고 삶을 계획하고 일기 등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보다 더 좋은 스카이 라운지가 있겠는가? 창밖에 멋진 풍경을 보면서 커피 한잔 하고 있으면 기분이 저절로 좋아졌다. 비행기에선 항상 좋은 책을 가지고 탑승했다. 원래 책 읽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비행기 안에서는 여러모로 책 읽는게 좋았다. 장시간 비행을 해야하는 여행에서는 딱히 할 것이 없는 기내에서 늘 읽고 싶었던 책을 읽으니 귀한 시간이 낭비되고 있지 않아서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스위스 제네바로 향하는 중에 창 밖의 풍경을 찍은 사진

 

언제부터 스위스에 대해 좋은 마음을 갖게 된 것일까? 스위스 나이프가 너무 잘 만들어진 제품이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스위스 알프스를 배경으로 한 만화나 영화를 보고 자라서 그랬을까? 그도 아니면 더 먼 옛날 부루마블 게임판 위에 결승점 가까이에 도달해야 살 수 있었던 스위스의 비싸게 매겨진 땅값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살아오면서 스위스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기에 그렇지 않았나 싶다. 

 

스위스는 유럽에서도 부유한 국가로 잘 알려져 있고, 세계적인 물가인상에도 상대적으로 잘 방어를 했다고 정평이 나있었다. 그런데 어쩌면 이 나라의 물건들이 원래부터 터무니 없이 비쌌기에 이제서야 다른 나라 선진국들이 그 물가를 따라 잡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스위스 가정의 평균 수입 또한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서도 높은 편인데, 이 또한 스위스인들의 삶의 질이 꼭 더 높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액수가 더 높은 금액을 받는다 하더라도 물가가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높으니 삶의 질에 있어서는 그렇게 더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빅맥 인덱스라는 도표가 있는데, 이것은 전세계 각국에서 빅맥이라는 맥도날드 햄버거가 얼마에 팔리고 있느냐를 알려 주는 도표이다. 이것을 보면 그 나라의 보편적인 물가가 어느정도 수준인지 알 수 있는데, 개인의 평균 수입이 훨씬 높은 나라들 중엔 빅맥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비싼 나라들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스위스일 것이다. 같은 $1불이라도 그 $1불이 그 나라에서 어떤 가치를 지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말레이시아 어떤 지역에서는 근사한 아침밥도 사 먹을 수 있었던 $1불은 스위스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종이에 불과 할 수도 있다는 사실. 난 스위스에서 내가 태어나서 먹은 햄버거 중에 가장 비싼 햄버거를 사 먹었다. 제네바를 여행한 후 몇일 뒤에 머물게 된 취리희의 첫날 저녁, 아마 미국의 디즈니랜드와 같은 곳 보다 더 비싸면서 평범한 햄버거였다. 이 나라의 물가가 얼마나 높은지 절감했다. 

 

다행히도 스위스 제네바에서 동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마치 에어비앤비인 것처럼 쓸 수 있는 곳을 알아 놨다. 내가 늘 가보고 싶었던 곳에 있었던 숙소였기에 주로 시간을 보내게 될 제네바와 좀 거리가 있더라도 그렇게 했다. 제네바에 나갈 때는 버스와 기차를 타고 40분을 이동해야 했지만 제네바의 강이 훤히 보이는 높은 곳에 위치한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루 30킬로 이상을 걸어 본 후에 자신감이 충만했는지, 버스를 놓쳤을 때에는 기차역까지 걸어서 그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 했다. 

 

스위스 여행에선 전반부는 좀 쉬는 것을 목표로 했다. 왜냐하면 이미 산티아고 순례길의 긴 걷기 여행으로 몸이 피곤했기 때문이다. 숙소도 스위스인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저렴한 곳이었기에 몸만 아니라 마음도 편히 푹 쉴 수 있었다. 스페인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에 양질 좋은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고 온 터라 스위스의 물가를 보고는 왠지 사기를 당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어디를 가나 잘먹고 잘자야 한다는 생각이기에, 숙소 가까이에 있던 식당으로 향했다. 어딜가나 늘 먹을 수 있는 평범한 음식보다 스위스에 왔으니 스위스의 특이한 음식을 맛보고 싶었다. 웨이트레스분의 추천으로 돼지코의 일부분이 들어가 있는 음식을 시켰다. 막상 돼지코가 접시 위에 올려 있는 것을 보니 더럽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원래 음식은 왠만하면 남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에 돼지코까지 다 먹어버렸다.

 

이 접시 위에 돼지코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맞추어 보시라!

 

식사를 마친 후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바깥 경치를 보고 있노라면, 이래서 사람들이 '스위스' '스위스' 노래를 불렀구나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늘 오고 싶었던 스위스 제네바 근처에 와 놓고도 본격적인 스위스 제네바 여행은 도착한지 3일째 되는 날부터 할 수 있었다. 도착한 곳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구지 멀리까지 갈 이유가 없었다. 어렸을 때에는 유명하다는 곳을 위주로 구경을 했다면, 이제는 내 취향에 맞게 내가 선호하는 동선으로 여행을 한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유명하지 않고, 왜 거기까지 가서 무엇무엇을 안 보았느냐고 할지라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된 이상 괜히 사람들이 다 가는 곳이니까 가보자는 마음은 없어진지 오래다.  

 

내가 묵고 있던 숙소 앞 방에는 필립이라는 스위스인이 묵고 있었다. 스위스는 프랑스어를 주로 쓰는 지역과 독일어를 쓰는 지역이 있는데, 이 친구는 스위스의 수도이기도 한 베른 출신 곧 독일어를 주로 쓰는 지역 출신이었다. 아주 소수이기는 하지만, 스위스-이탈리아 국경 근처에는 이탈리아어를 주로 쓰는 지역이 존재하기도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안 된 친구였는데, 마음에 상심이 커 보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길을 걷던 독일인 크리스를 만난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또 만나게 된 비슷한 처지의 청년이라서 나 또한 이러한 만남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친구는 현재 영국 웨일즈에서 살고 있었는데, 자신의 차를 타고 배편을 이용해 유럽대륙으로 옮겨 온 후에  그곳에 와 있었다. 타고 온 차는 아버지께 물려 받은 유품인 듯 했다. 누군가가 옆에 늘 있을 때는 모르지만, 막상 그 존재가 없어질 경우에 우리는 큰 박탈감을 느끼는 것 같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우리 모두가 곁에 있을 때에는 서로에게 잘하지 못하니까 그런 표현이 생긴 것은 아닐까? 뚜벅이 생활을 오래하다가 차를 타고 여기저기 다니는 친구를 보니 미국에 두고 온 내 차가 그리웠다. 하찮은 차 한대도 곁에 있다가 없으면 허전한데, 본인의 아버지가 이제 세상에 없으니 그 마음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친구하고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다가다 만나면 보통 사람들이 처음 만난 이들과 나누는 인사 정도의 대화가 아닌 인생에 깊고 심오한 대화를 나눴다. 이 청년이 그만큼 그때 아버지를 잃은 상심이 컸기 때문에 이런저런 인생의 질문들을 처음 본 이방인인 나에게 나눴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