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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먼 옆동네 스위스 제네바 가는 길

by 어진윤 2024. 4. 23.

세상이 좁기는 좁다. 내가 스위스에 가서 처음 머무르게 된 곳은 예전에 내가 알던 미국인 중년의 부부가 여행을 온 곳이기도 했다. 그 당시 아내분이 자신의 인생의 굴곡을 책으로 펴낼 마음이 있었던 중, 책 집필 관련 세미나 참석차 스위스에 가게 되었다. 그 남편 분은 어마어마하게 멋있는 곳에 위치한 지역에서 세미나를 참석했다면서 찍은 사진을 내게 문자로 보내왔다. 다녀 온 후에 만났을 때에도 그곳의 경치에 대해 극찬을 하면서 사진들을 보여주었는데, 내가 그곳에 오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이분이 이야기한 장소가 어디인지 생각조차 안하고 있었는데 정확하게 그들이 세미나를 했던 장소에 내가 오게 된 것이다. 어떤 때는 사람이 마음에 어떠한 소원을 갖고 있기만 해도 그 소원들이 이루어지는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분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나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그랬을까, 이곳에 오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는데 오게 되었으니…. 여담이지만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에 누나가 내가 정말 갖고 싶었던 카메라를 선물한 적이 있는데, 그 기종은 내가 구입 하려고 했던 기종과 정확하게 일치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대학생이 구입하기에는 좀 비싼 카메라여서 좀 망설여지는 카메라였는데 졸업선물로 받고 되게 신기해 했었다. 누구에게도 그 카메라가 같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카메라는 홍콩에서 중국 쿤밍으로 갈 때 부친 내 배낭 가방안에 있었는데, 쿤밍에서 가방을 찾고 보니 그 카메라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미국에선 공항직원들이 승객의 물건들을 슬쩍하는 일이 논란이 된 적이 있는데, 어쩌면 홍콩 혹은 쿤밍 공항에서 일하던 사람이 내 카메라를 훔치지는 않았을까 생각된다. 짐을 부치는 순간까지도 있었던 카메라가 쿤밍에서 찾았을 때에 없어졌으니, 나로써는 그렇게 생각 할 수 밖에… 7년을 썼던 카메라지만 모든 물건을 잘 관리하며 오래 쓰는 편이라서 마치 새것과 같기는 했다. 스마트폰의 출현으로 인해, 카메라가 위협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내 손에 컴퓨터가 들려있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걷기 여행에 얼마나 유용했는지 모른다. 스마트폰을 멀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의 부피와 무게를 줄여주는 스마트폰이 너무 고마웠다.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과 영상이 많아서 용량 초과 메시지가 뜰 때면, 다음에는 꼭 가장 큰 용량의 스마트폰을 구입하겠다는 다짐까지 했을 정도다. 

 

Geneva근교 Burtigny 지역의 풍경

 

스위스 도착 셋째날 드디어 제네바를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출발 하기로 했다. 숙소에서 기차역까지 데려다 주는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과 기차역에서 또 기다리는 시간까지 감안하면 약 1시간 정도 소요되는 길이다. 사실 스위스에 도착한 다음날 곧장 제네바에 나가려는 마음도 있었다. 스위스에서 일주일간 정도의 시간 중에 하루를 아무곳도 안 가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이 피곤했는지 조금 늦게 일어났고, 스위스 모든 지역이 내겐 새로운 지역이기에 그냥 내 숙소가 있는 지역을 둘러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제네바 여행을 하루 더 미뤘다. 그런데 도착한지 셋째날인 토요일에 제네바를 가려고 기차역까지 가는 버스를 잡아타려 하는데, 이 버스가 카드는 안 받고 현금만 받는다는 것이 아닌가? 내가 묵었던 숙소가 호텔도 아니어서 환전할 곳이 마땅치 않은 것이 문제였다. 단돈 몇푼의 버스비로 인해서 제네바에 오늘도 나갈 수 없게 되는 것일까? 문제는 그 아침 버스가 현금만 받는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토요일이라서 버스 운행이 그리 많지도 않았다. 다음 버스는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있었다.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던 중에 필립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차가 있었기에 해 줄 수도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기차역이 걸어 가기에는 먼 거리라도, 차로는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다. 난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도 기꺼이 운전해 준 경험도 많기에 이 친구도 당연히 해 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친구가 자전거를 고치러 와서 안 된다고 했다. 갑자기 미국에 두고 온 내 차가 그리워졌다. 그래서 내가 버스를 한참 기다려서라도 제네바에 갔다와야 한다는 생각에 필립에게 내 유로를 스위스 franc로 환전해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스위스인이지만 현재는 영국에서 사는  친구이기에 유로에는 별로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너무나 적극적으로 자신의 스위스 franc를 바꾸어 주는 것 아닌가? 물론 그 친구에게 유리한 환율로 바꾸어 주었다. 생각해보니 이 친구도 영국에 돌아갈 때에 유로가 통용되는 지역을 차로 운전하여 지나가게 되니 유로가 필요했던 것이다.

 

한참 뒤에 필립을 만나러 온 친구가 도착을 했고, 내 자초지종을 들은 후엔 자신이 기차역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아프리카 출신 흑인분이었는데,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필립이 혹시 고칠 수도 있겠다는 말에 방문했는데, 결국 필립이 가지고 있는  부품으로는 고칠 수 없다는 통보를 듣고 어차피 시내로 가야하는데 날 데려다 주겠다는 것이다. 그분에게 시내에서 구입 하려는 타이어 튜브가 얼마냐고 물어보니 싼 것은 얼마정도이고 품질이 좋은 것은 얼마 정도라고 내게 말해 주었다. 난 필립에게서 환전한 스위스 franc 거의 전부를 이분에게 주면서, 그분이 좋은 제품을 구입할 수 있을 만큼의 금액을 전해주었다. 난 이미 기차역에 도착 하였기에 크레딧카드로 승차권을 구입할 수도 있었고, 환전소에서 달러를 스위스 franc로 환전하면 됐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필립은 기분이 좀 안 좋아보였다. 그렇게 많은 돈을 내가 주는 줄 알았다면, 자신이 기꺼이 했을 걸 하는 눈치였다.

 

이전에 빅맥 인덱스라고 하여서 각국의 빅맥 가격으로 그 나라의 물가가 어느 정도이지 가늠하는 도표가 있다고 했는데, 내 개인적으로는 스타벅스의 가격을 보고 그 나라의 물가를 어느정도 예상하는 편이다. 스타벅스도 빅맥과 더불어 전세계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 들어가 있다. 물론 커피를 주로 다루는 기업이라서 커피 가격으로 물가를 예측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기는 하겠다. 튀르키예의 Hatay 지역에서 내가 좋아하는 White Chocolate Mocha with Soy Milk Venti 사이즈를 아무 부담 없이 마셨던 반면에, 스위스에서는 Tall 사이즈의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스위스의 높은 물가를 볼 수 있는 가격이었다. 

 

2023년 3월 중순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스타벅스의 가격표. 지금은 아마 더 올라 있을 것이다. 가격은 미국에 비해서도 좀 높은 편이다.

 

스위스 제네바에 제일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사실 요한 칼뱅이 가장 컸다.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칼뱅이 활동했다고 알려진 도시에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종교개혁자 중에 한명인 칼뱅이 35년간 시무하였던 교회와 그가 앉았던 의자 그리고 층계를 올라 설교 했던 곳이 보존 된 교회를 방문했다. 어렸을 때에는 여행객들이 유명하다는 곳은 꼭 가봤던 반면에 이제는 내게 의미가 있는 곳을 주로 다닌다. 주일이 되면 어디를 가던지 그 지역에 방문할 교회를 찾아보기도 한다. 세계 어디에 있던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다.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여기저기 사람들로 붐볐다. 공원에서는 체스를 두고 있는 사람들,그리고 큰 광장 앞에서는 그 지역 유명한 벼룩시장 열리고 있었다. 각종 희귀한 제품들을 테이블 위에 진열해 놓고 판매하기에 상인들은 여념이 없었다. 딱히 살 것이 없더라도 한번쯤은 가볼만한 곳이었다. 유명한 카페 앞에는 야외에도 발디딜 틈이 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대낮부터 맥주나 와인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넘쳐났다.

 

스위스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스위스 나이프를 생산하는 회사로 유명한 Victorinox인데, Geneva지역의 Flagship Store를 방문했다. 이미 40개의 기능을 갖춘 다용도 victorinox 제품을 쓰고 있지만, 혹시 지인들에게 선물할 것은 뭐가 없을까 하고 방문하였다. 지금은 세계 어디를 가던지 배달이 되어 어떤 물건이든 구입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되지만, 그래도 그 나라가 원조인 제품을 현지에서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구입한 물건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미 Victorinox 가방도 있어서 뭘 구입할까 고민하던 중에 야체 껍질 손질할 때에 유용할 peeler를 샀다. 아직 여행이 많이 남아있기에 가능하면 부피가 작고 가벼운 것을 생각하던 중에 그렇게 결정했다. 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지금도 어마어마하게 유용하게 사용 중이다. 다른 것도 사용해 봤지만, 이 회사 제품은 정말 품질이 우수한 것 같다. 집에 돌아오는 길, 기차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는 대신에 그냥 걸었다. 빠른 교통수단을 사용할 때는 편리해서 좋지만, 충분히 그 장소를 보고 느끼기에는 걷는 것 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을 오랜 여행을 통해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걸어서 산 위에 있는 숙소까지 가는 길에는 차 안에서는 보지 못한 한국 식당이 있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한국인이 많이 사는 한인타운이 아니라, 한국인이 전혀 살지 않을 것 같은 지역에 Cuisine Coreenne라는 한국식당 간판은 식사시간이 아닌 그 시간에도 나를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돌솥비빔밥이 지금 원화로 2만5천원 정도 되었지만, 그런 외진 곳에 한국음식을 파는 곳이 있다는 것에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