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취리히에서 맞이 하는 첫날 아침이지만 그렇게 설레이는 마음은 없었다. 오랜 여행을 하면서 이미 아름다운 도시들을 많이 봐서 그랬을 수도 있다. 취리히에 왔다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무엇이냐고 호텔 카운터에서 물어보니, 그중에 하나가 Top of Zurich가 있어서 취리히가 한눈에 보이는 산에 위치한 Uetilberg 에 대해 얘기해 줬다. 여러 곳 중에 한 곳이었는데, 꼭 가봐야 한 다는 곳 중에는 취리히와 동떨어진 곳도 있었기에 제일 가까운 곳인 Uetilberg 다녀 오기로 했다.
혼자하는 여행이 좋은 이유 중에 하나는 오로지 나 홀로 모든 스케줄을 관리할 수 있어서 변수가 적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일정을 조금 늦게 시작하고 싶거나 서두르고 싶으면 마음대로 할 수가 있다. 이날은 왠지 아침을 느긋하게 시작하고 싶었다. 숙소를 나가서 조금 걸으니 취리히 중앙역까지 가는 기차를 타러 가는 길에는 나 말고도 그리로 향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표를 끊는 기계에서 승차권을 구입한 후에 기차를 기다렸다. 여행을 할 때면 기차역에서 기다리거나 기차 안에서 우연치 않게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하게 될 때가 있다. 기차를 기다리던 중엔 남미에서 일자리를 찾아 취리히에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과 얘기할 기회가 생겼다. 그 사람은 그 전날 친구들과 술을 많이 마셔서 늦게 일어나 회사에 제 시간에 못가게 생겼다고 하소연을 한다. 알람을 하고 잔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었단다. 나는 반농담조로 술을 많이 마시면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얘기해 줬다. 취리히에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어떻게 벌써 그렇게 같이 술마실 친구들까지 사귀었는지 신기했다. 기차 안에서는 중국에서 유학을 와서 대학원을 다니는 사람과 마주보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나는 스위스에 사는 외국인들을 보면서 그들은 왜 자신이 사는 나라를 놔두고 이 먼나라까지 오게 되었나 하고 궁금해졌다. 나 또한 태평양을 10시간 이상 비행 해야 갈 수 있는 먼 타국에서 이민 생활을 하지만…. 이 중국분은 원래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싶었는데, 본인이 가려는 학교의 학비가 비쌌단다. 내 생각에는 스위스가 더 비쌀 것 같았는데, 스위스의 학비는 어떤지 몰라도 미국에서도 학교마다 학비가 천차만별이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었다.
오늘의 여행 목적지인 Uetilberg는 내가 있는 곳에서 단번에 가는 기차가 없어서 한번 갈아타야 했다. 갈아타는 기차역은 사람이 너무 없어서 길을 물어 볼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또 Uetilberg가 그렇게 유명한 여행지는 아닌 것인지, 아니면 평일 아침이라 그런지 몰라도 그리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나는 자연을 좋아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걷는 것을 좋아해서 나에겐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역에서 내리자 마자 취리히 중앙역으로 출발하는 기차 시간표를 찍어 놨다. 이곳 Uetilberg 여행을 마친 후 무료하게 기차역에서 기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고작해야 2박 3일 있는 취리히 여행에서 알차게 시간을 쓰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각도시에 자신의 관심을 끄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러 곳을 정해진 시간 안에 마쳐야 하는 여행이라면 한 도시당 2박 3일이나 3박 4일 정도를 할애하면 괜찮다는 생각이다. 어떤 도시들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아서, 1박 2일이면 충분한 곳들도 있다.
Top of Zurich 라는 곳에 올라와 보니 과연 절경은 절경이다. 많은 유명한 곳들이 다 그렇듯이 한국분들도 보였다. 해외에 나와서 한국인들을 만나면 유난히 반가운데, 한국인들이 없을 것 같은 장소에서 만나면 더욱 그렇다. 경치를 감상하고 있는데, 옆에서 한국말로 대화를 하는 소리가 새의 지저귐 같이 정겹다.
혼자 여행을 하면서 좋은 것들을 보거나 맛있는 것을 먹을 때면, 곁에 누군가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떤 유명한 분도 인도 Taj Mahal 의 건축물을 혼자 보고 있다가, 이제 결혼을 해서 이런 아름다운 순간들을 같이 공유하고 싶은 생각에 결혼을 다짐했다고 했다. 나는 20대 초반 한창 예수님을 뜨겁게 따르던 시절에 ‘내가 독신으로써 더 많은 영혼들을 전도하고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릴 수 있다면, 기꺼이 기쁨으로 독신으로 남고 싶다’는 기도를 마음 속 깊이 수도 없이 했었다.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인생엔 결혼보다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취리히 Victorinox 지점에 들렀다. 제네바 만큼 큰 곳이었다. 일본에서 스위스로 유학와서 아예 눌러 앉았다는 일본인 점원이 스위스 나이프에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 주었다. 나는 이미 40여 기능을 하는 스위스 나이프가 있었기에 또 구입하기는 그랬지만 누군가의 이름을 새겨서 선물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것도 칼이 포함된 제품이기에 이것 하나 때문에 가방을 check-in 하고 싶지는 않았고, 또 우편으로 미국에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진열된 제품 중에는 스위스라는 국가 이름이 스위스 나이프 위에 각국의 언어로 장식된 것도 보였다. 그곳 점원은 이 특정 상품은 전세계에서 오직 스위스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 이미 이것보다 더 많은 기능을 갖춘 스위스 나이프 갖고 있던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그러나 스위스의 뛰어난 제품 중에 하나를 스위스에서 직접 구매 했다는 것 말고는 장점이 없는 것 같아서 구입하지 않았다. 어떤 물건을 구입할 때에 비싸더라도 필요가치가 있으면 장만을 하는 타입인데, 이미 제 역할을 하고 있는 물건이 아예 사용 불가라면 몰라도 같은 목적을 이루는 두 물건을 소유하는건 욕심이라는 생각이다. 내 친구들이 선물로 준 선물권으로 미국에서 구입한 victorinox 스위스 나이프는 지금도 과일을 깍거나 무엇을 자르거나 아주 가끔씩이기는 하지만 와인병을 오픈 할 때에도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다. 40여 기능을 갖춘 다목적 스위스 나이프이지만, 사실 자주 사용하게 되는 기능은 3~4개 밖에 안 된다.
축구를 좋아하는 내게 취리히에 FIFA 축구 박물관이 있다는 것은 하나의 덤이었다. 축구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장소였다. 그렇게 축구를 잘 하는 나라로 알려지지 않은 나라인 스위스에 왠 FIFA 축구 박물관이 있는지에 대해선 좀 의아했다. 취리히에서 유명한 제과점을 들르고 아름다운 거리와 건축물들을 감상하니 식사 시간이 되었다. 언젠가 방송에서 스위스에 여행간 사람들이 Fondue라는 음식을 먹으러 간 것을 보았다. 나 또한 스위스에 가면 저 음식을 먹어 보자는 생각을 했었고, 드디어 오늘 그걸 먹으러 간 것이다. 어디를 여행하던지, 어디에서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을 선호한다. 물론 fondue는 집에서도 내가 해 먹을 수도 있고 내가 사는 나라에 이민 온 스위스 가정집에서 먹어 볼 수도 있겠지만, 스위스 사람들이 인정하는 fondue 맛집에서 하는 fondue는 어떠 맛일지 궁금했다. 처음 먹어 보는 음식이라 그 음식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다. 그냥 TV에서 볼 때에 되게 맛있어 보였다. 지금 환율로 일인당 약 4만원 정도 하는 음식이었다. 주문을 하자 웨이터분은 사람이 기대 되겠금 불을 피우는 작은 난로와도 같은 것과 그 위에 올려질 그럴듯한 빨간 냄비를 가지고 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빨간 냄비 안에는 이미 노란 치즈가 녹아져 들어가 있었다. 구지 비교를 하자면 샤부샤부나 스키야키를 먹는 것 같은 모양새를 한 식탁이었다. 빨간 냄비 안에 있는 치즈를 가열한 후에 때가 되면 기다란 포크로 빵 조각을 찍어서 냄비 안에 치즈를 듬뿍 묻혀서 먹는 것이었다. 얼큰한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 입맛이라 그런지 근사한 모습의 식탁으로 한껏 기대를 한 것치고는 실망스러운 맛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 해 보니 왜 이런 간단하고 대단할 것이 없는 음식이 4만원 정도 씩이나 해야하는지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것도 그냥 싼 음식인데 내가 그렇게 느낀 것이었을까? 그곳에서는 음식에 감동하기 보다는 그 식당에서 흘러 나온 노래를 듣고 감동했다. 주인분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내가 아는 CCM이 영어로 나오는 것 아닌가? 음식을 다 먹고 계산도 다 한 상태 였지만, 음식에 감동해서가 아니라 그 영어 찬양이 먼 이곳 스위스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는 것에 감동해서 식당 밖 취리히 도심 풍경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그 노래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은 “I still believe your faithfulness….. Even when I don’t see, I still believe~” 였다. 믿는 자로써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풍파를 견뎌야 할 시기가 오는데, 그럼에도 믿음을 잃지 않고 그분을 신뢰할 것인가? “난 아직도 당신의 신실하심을 믿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때에도, 난 아직도 믿습니다” 라고 하는 고백의 노래가 나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믿는 자들은 처절히 혼자인 것 같은 때가 오지만, 결코 혼자인 적은 없다. 그분이 늘 함께 하시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