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 밀란과 인터 밀란이라는 세리에이 축구팀이 뛰고 있는 밀란이라는 도시는 이미 스페인과 스위스를 여행 한 후에 와서 그런지 멋진 건물들을 보고도 감동까지는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곳도 분명 유럽의 첫 도착지였다면 감탄사를 연발할만한 곳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밀란은 많은 이들에게 패션을 떠올리게 하는 도시이지만, 나는 특별히 쇼핑을 하는데 시간을 쓸 생각은 없었다. 앞으로도 더 긴 여행을 할 계획이었기에, 되도록이면 짐이 가벼워야 했다. 사실 내가 밀란을 온 이유는 다른 이탈리아 도시들을 방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2022년 가을에 로마와 피렌체 그리고 페루지아 등을 여행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 꼭 와보고 싶었던 베니스 등의 이탈리아 북부를 여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밀란은 워낙에 유명한 도시라서 와보고 싶었던 동시에, 밀란에 왔다면 성 어거스틴 그리고 성 암브로시오 주교와 관련된 곳에는 꼭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믿음의 어머니인 모니카의 끊임 없는 기도를 받고 자란 성 어거스틴이었지만, 그는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참으로 방탕한 삶을 살았었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권유로 밀란에서 성 암브로시오 주교의 설교를 들은 후 큰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온전히 그의 삶을 주님께 드린 것은 아직 아니었다. 이전의 삶을 계속 살아가던 절망적인 어느날 밀란의 한 정원에서 어린 아이가 이렇게 외치는 소리를 듣는다. “집어 들고 읽으라!” 그 당시 로마서를 읽던 성 어거스틴은 그것이 어떤 신적 개입이라 느끼고 로마서를 집어 들어 읽었는데, 당시 읽은 구절은 로마서 13장 13~14절 말씀이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라고 쓰인 말씀을 일고 곧장 회개함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그리고 387년 부활절날 성 암브로시오 주교로 부터 세례를 받는다. 그때 그의 나이는 32세였다. 밀란에는 성 어거스틴이 성 암브로시오로 부터 세례를 받았던 장소에 그것을 기념한 교회가 세워져 있었다. 평일 점심 시간 전 시간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유료입장권을 내고 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렸다. 어떻게 보면 늦은 나이에 예수님을 믿었지만, 그는 교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교부 중에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나 또한 하나님을 모르던 어린 시절 방황과 19세에 주님을 극적으로 만나 변화된 삶을 살고 있는 터라 더 가깝게 느껴지는 역사적인 인물이다. 이런 사연이 있는 도시 밀란이기에 더 뜻 깊었다.

아침 시간을 거의 모두 성 어거스틴과 성 암브로시오와 관련된 곳을 방문하고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 리저브에 들렀다. 평범한 스타벅스 커피숍이 아닌 스타벅스 리저브라서 그런지 굉장히 예술적인 건물 거의 전체를 차지 하고 있었다. 점심식사 전에 커피를 즐기러 온 이탈리아 사람들과 관광객들로 붐볐다. 스타벅스가 어디에 입점 해 있는지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이다. 감히 스타벅스가 있을 건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스타일의 건물에 각도시마다 특유의 스타벅스가 자리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무엇을 먹을까 생각하다가 왠지 피자가 땅겨서 밀란 지역에서 피자를 잘 한다는 곳으로 향하였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피자가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유래를 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나폴리는 몇일 뒤에 갈 예정이니 이탈리아 밀란에서의 피자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어디를 여행하던지 어떤 건축물이나 경치보다도 그곳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이 흥미롭다. 지나가던 길에 있는 정육점에 들러서 그곳에서 어떻게 각부위의 이름을 부르는지도 보고 시세를 알아보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줄 서서 주문하고 있는 가족이 운영하는 제과점에선 사람들이 이탈리아어로 어떻게 주문하고 있는지 귀를 기울여 보기도 한다. 이탈리아 언어는 왠지 모르게 정겹다.
꽤 먼걸음을 걸어서 Pizza A.M. milano 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인 오후 12시를 조금 넘어서 도착을 했는데, 아직 가게가 열지 않았다. 내가 관광객이라서 개장시간을 몰라서 일찍 도착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다른 이탈리아인들도 와 있었기에… 점원으로 보이는 분이 가게 오픈 준비를 천천히 하고 계셨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손님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신경쓰지 않고 여유롭게 가게 오픈 준비를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드디어 문이 열렸다. Margherita Pizza를 주문하고 화장실에 손을 씻으러 갔는데, 화장실 안에 20년도 지난 신문기사가 벽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2002년도 한국과 이탈리아전에 대한 기사였다. 그때 주심이었던 모레노 주심이 토티를 퇴장시키는 사진과 함께 이런 이탈리아 말이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Non mi pento ho fatto un buon lavoro”. 축구에 열정을 가진 나라답게 그리고 그런 이탈리아에서도 굴지의 축구클럽을 두팀이나 가지고 있는 도시답게 그날의 앙금이 아직 가시지 않았나보다. 페널티지역에서의 할리우드 액션으로 두번째 옐로카드를 받고 퇴장 당한 토티가 이탈리아 국민들의 눈에는 부정당하게 퇴장된 것으로 보였나 보다.
주문한 피자가 나왔다. 맛집이기는 맛집인가 보다. 가게는 금새 사람들로 가득했고 내 옆 테이블에는 가족여행을 온 미국인 가정도 있었다. 미국을 30개주 이상 일과 여행으로 다녀 온 경험이 이럴 때에 빛을 발한다. 미국 어디 출신이던지 그들이 살던 곳을 내가 가 봤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그들의 고향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에 좋다. 그들 또한 해외에서 만난 동양인이 그들의 언어로 대화를 걸어오는 것을 반가워한다. 미국 내 식당 옆자리에서 만났다면 옆 테이블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같이 대화를 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지만, 여행 중에서의 만남이 때로는 서로에 대한 벽을 낮추기도 하는 것 같다. 피자는 이탈리아가 원조라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일지는 모르지만 역시 피자는 이렇게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미국에서 수없이 먹어 봤던 그 맛있던 피자와는 차원이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미국에서 결코 맛본적이 없었던 그 번잡할 수 없는 무엇… 물론 미국도 이탈리안 이민자가 많은 나라이기에 피자도 어마어마하게 맛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서는 많이 미국화(?) 된 것 같다.

이탈리아인들의 일상 생활을 감상하며 다음 목적지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쪽으로 향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마지막 만찬’이 벽에 그려진 교회로 알려진 곳이다. 도착을 하니 교회 건물 밖에 견학 온 수많은 인파들이 있었다. 확성기를 들고 많은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는 사람들과 줄 서서 티켓을 사려는 사람들 그리고 매진되어 티켓을 구입하지 못해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 아직 3월 중순인데 이렇게 덥다니 할 정도로 많이 더운 날씨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땅히 앉을 곳도 없어서 근처에 와이파이와 화장실도 쓸 겸 카페에 들어가서 과일이 듬뿍 들어간 음료를 시켰다. 밀란에서 내가 가 보고 싶었던 것을 다 마친 나는 밀란의 차이나타운을 가보기로 했다. 세계 어느 대도시에나 차이나타운이 다 있다고 하는데, 이곳 차이나타운도 시간이 된다면 한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전에도 얘기 했지만 얼큰한 것이 땡기는데 마땅히 갈만한 한국식당을 모른다면 나는 중국식당에 가서 Hot & Sour Soup를 시켜 먹는다. 이날도 차이나타운 방문을 겸해서 그곳에 위치한 Yue Bin Lou라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저녁식사를 했다. 내가 좋아하는 수프를 시킨 후 그곳에서 추천하는 면류를 하나 시켰는데 맛이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나중에 베니스에서 우연히 만난 밀란으로 향하던 한국인 관광객분들께 추천할 만큼 맛이있었다. 오죽하면 그곳 명함까지 받아왔다. 과거와 현재가 잘 어우러진 것 같은 밀란을 떠나 다음날은 5개월 전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던 베니스에 간다. 내가 이탈리아에 5개월 만에 다시 오게 될 줄은 그때는 상상도 못했다. 정말 우리네 인생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것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