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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 스페인-포르투갈 국경

by 어진윤 2024. 2. 17.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친지 11개월째 되는 날인 오늘 왠지 산티아고 순례 여정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숫자 11이 마치 건강한 두 다리를 연상 시켜서 그랬는지 몰라도 오늘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서 써보고 싶어졌다. 내 기억력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는 아마도 평생에 가장 많이 걷게 된 하루(2023년 3월11일, 대략 35 킬로미터)를 선사해 준 산티아고 순례길. 종착점에 도착 했을 때에는 걷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과 이제는 또 다시 이렇게 걷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해 준 그 길. 아, 생각났다. 내가 왜 오늘 11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이 산티아고 길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려 가기 시작했는지.... 그 이유는 가장 짧은 길인 포르투갈 길을 걸어 놓고도 다시는 안 걷겠다고 생각했던 그 산티아고 순례 길을 기회가 된다면 가장 긴 길로 알려진 프랑스 국경에서 시작하는 800여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걷고 싶어진 간절한 마음 때문이기도 했고, 오랜시간 여행을 해 봤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 중에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상대적으로 아직 많은 분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듯한 포르투갈 길의 여정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포르투갈 길 첫째날 

2023년 3월 10일, 드디어 늘 걷고 싶었던 산티아고 순례길의 여정에 들어섰다. 

좋은 책과 아름다운 길을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자연스럽게 산티아고 길에 대해서 읽게 되었고 언젠가는 꼭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미국 오레곤주에 잠시 머무르다 연락이 된 지인의 부탁으로 그해 2월에 이스라엘에서 강의를 한 후 미국에 돌아오는 길에 있는 유럽 대륙을 못본체 지나칠 수가 없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서바나, 곧 스페인에 들렀다가 가기로 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는 벤구리온 공항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편도 티켓을 구입한 나는 드디어 스페인에 가게 된 것이다. 

 

원래 2022년도 10월에 그리스, 이탈리아, 튀르키예 등의 나라들을 한 달간 여행할 기회가 있었기에 스페인도 껴넣고 싶었지만 한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여러 곳을 끼어 넣어 번갯불에 콩구워 먹듯 여행하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은 그때 당시엔 처음가는 그리스와 이탈리아에게 예의가 아니다 싶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몇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유럽 대륙을 다시 밟을 기회가 온 것이다. 역시 우리 인생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여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스페인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갔다. 가는 중엔 서유럽의 최남단으로 알려지고 아프리카 대륙과 가장 가까운 육지로 알려진 Tarifa에서 묵다가 배를 타고 모로코에 당일치기 여행도 했다. 

 

이렇게 비행기, 배와 대중교통 수단 등을 이용하여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에 도착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여러 갈래의 길이 있는데, 나는 처음하는 순례길이기에 상대적으로 짧으면서 국경을 걸어서 다른 나라로 들어갔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도 한 포르투갈 길을 선택했다. 물론 프랑스 국경 바로 직전의 마을에서 시작하는 길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 길은 적어도 한달은 잡고 걸어야 하기 때문에 그 정도의 시간적인 여유가 없던 나로서는 포르투갈 길이 안성맞춤이었다. 

 

리스본에서 저녁을 먹다가 알게 된 바로 옆 테이블의 이탈리아 여자분 또한 산티아고 길을 걸었다고 했다. 그녀는 프랑스 길을 걸었다고 했는데 한달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걷기 시작한 첫날 비가 와서 옷과 신발, 가방 등이 흠뻑 젖었다는 에피소드와 함께 왜 그 길을 걷게 됐는지도 얘기 해 줬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간도 많이 있었고 걷는 것을 좋아하며 좀 도전적인 것을 해 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한달 간의 여정 후엔 뭔가 뚜렷한 진로가 보였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여행을 시작했단다. 이탈리아 북서부 Genoa라는 바닷가 마을에서 온 사람이었는데, 영어를 꽤 잘하는 편에 속했다.

이렇게 여자 홀로 내가 가려는 길보다 몇배나 더 먼 길을 걸어갔다 온 것을 보면서 오랜세월 솔로여행으로 다져 온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게 되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출발하여 스페인 국경 근처에 있는 발렌샤라는 동네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리고 순례자들이 여행하다가 지쳤을 때에 쉴 수 있는 장소인 Albergue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하루를 묵을까도 생각했지만 아직 걸을 시간이 남았기도 했기에 스페인에 걸어 들어간 후에 숙소를 찾기로 했다. 그곳에선 그냥 순례자의 여권 역할을 하는 Credential 과 도장만 받아서 나왔다. 적어도 100 킬로미터 이상을 걸어야 나중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을 때에 증서를 주는데, 그 여권이 처음 도장이 찍힌 것과 행선지에서 받은 도장들이 있어야 증서가 발부된다. 물론 그 증서를 받으려고 걷는 것은 아닐지라도 하나의 기념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여권과 가는 길에 도장들을 받아야 순례자로 인정이 되어 Albergue에서 묵을 수 있는 자격도 주어지는 것이다. 

 

3월10일 늦게 도착하여 많이 걸을 시간은 없었지만 그래도 계획했던 1주일 안에 100킬로 미터 이상을 걸으려면 첫날 몇시간이라도 걸어놔야 했다. 그리고 포르투갈 근처에 처음 들른 공식 숙소는 마음에 드는 분위기도 아니어서 그냥 지나친 부분도 있다. 이렇게 한 것이 천만 다행인 것은 스페인에 걸어 들어가서 Tui 라는 동네에 있는 Albergue는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Tui까지 걸어 갈 때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오늘은 날도 많이 늦었으니까 내가 순례자 여권을 받은 첫숙소에서 잘 것을 괜히 걷기 시작했나? 그도 그런 것이 막상 걸어서 갈 때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하기도 했고 또 다음 숙소가 어디에 있는지 알길이 없는 초행길 이었기에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전에 리스본에서 만난 이탈리아 여자가 겪었던 것처럼 첫날부터 비에 쫄딱 맞아서 다 젖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를 못찾는 것 아닌가하는 불길한 생각 등등.

 

다행히도 스마트폰 전화기 지도에 표기해 둔 곳으로 잘 이동하고 있었고, 그 장소에 숙소가 있기만을 바라며 걷고 또 걸었다. 첫날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 아름다운 광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숙소에 다가가면 다가 갈 수록 오랜세월을 견뎌 온 듯한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마을에 다달았다. 그리고 그곳에 바로 내가 첫날 묵게 될 Albergue가 있었다.

 

이곳으로 오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하게 하기도 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의 숙소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게 한 Albergue였다. Albergue Idea Peregrinas라는 곳이었는데 내 개인적 소견으로는 괜찮은 숙소에 속했다. 깨끗하고 활기찬 분위기에 상냥한 스태프들까지 다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내가 묵는 숙소에는 단 한사람도 없어서 오로지 혼자 쓸 수가 있었다. 비수기여서 그랬는지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의 묘미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는 것도 있다. 그런데 이미 한달 이상 여행으로 잠잘 때 만큼은 편안한 쉼을 더 선호했던 그 당시에는 아무도 없는 방을 혼자 쓰는 것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내가 상상했던 산티아고 순례길 숙소들은 한방에 사람들로 득실거리고 또 비위생적 일수도 있다는 내 생각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경험이었다. 오후 4시~5시경 도착했기에 저녁이라도 먹을 생각이었는데, 내 생각에는 열려 있어야 할 식당들이 식사 시간대에만 잠시 열고 닫고를 하는 것 같았다. 배가 고팠지만 저녁에 다시 식당이 열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숙소 근처에 괜찮은 식당이 있었는데 그곳은 바로 Taperia Alboio라는 곳이었다. 드디어 저녁 7시반이 되어서야 저녁을 먹게 됐다. 기왕에 먹는 것 잘 먹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어디가서 먹을 때마다 돈 생각하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먹는 편이다. 특히 해외에 나가서는 새로운 음식도 많고 또 언제 그런 곳에 다시 올지 모르기에 더 그렇게 하는 편이다. 아무튼 그날 저녁 먹은 음식 중엔 스페니쉬 오믈렛이 있었는데, 이 스페니쉬 오믈렛을 시킨 이유는 순전히 내가 스페인에 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을 때에도 영어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보다도 원서를 읽는 것을 당연시하는 나는 그것이 책이 되었건 어떤 음식이나 물건이 되었던지 간에 오리지널을 중시한다. 더더욱 내가 늘 미국에서 먹던 스페니쉬 오믈렛이 아닌 정말 스페인에서 먹는 스페니쉬 오믈렛은 어떤지 맛보고 싶었다. 

 

스페니쉬 오믈렛이 드디어 나왔다. 그리고 그 모습과 맛은 내가 늘 스페니쉬 오믈렛이라고 믿고 미국에서 먹었던 그 맛과 모양이 아니었다. 내가 배가 고팠고 처음 접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난 그 스페인에서 먹은 스페니쉬 오믈렛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후에도 스페인 여행 중엔 스페니쉬 오믈렛을 파는 식당에서는 자주 시켜 먹었다. 심지어 어저께는 내가 스스로 스페니쉬 오믈렛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그리고 만드는데 정말 몇 안되는 내용물이 들어간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랐다. 계란, 감자, 양파와 올리브 오일이 다였다. 맛과 모양은 어느정도 비슷해서 흡족했던 나머지 이웃에 사는 백인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맛보여 들이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Greek Salad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미국에서 그릭 샐러드는 내가 그렇게 잘 먹는 샐러드가 아니다. 정말 선호하지 않는 샐러드 종류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정작 그리스에 가서 먹은 그릭 샐러드는 정말 차원이 다르게 맛있어서 매끼니마다 먹고 왔던 기억이 있다. 물론 들어간 내용물은 비슷하다. 그런데 왜 그리스에서 먹는 그릭 샐러드는 차원이 다르게 느껴졌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여행을 하고 있어서 더 맛있게 느꼈다고 누군가는 말 할테지만.… 그리스에서 먹는 그릭 샐러드는 미국에서나 다른 곳에서 먹는 그릭 샐러드와는 차원이 다르게 맛있다.  

 

금요일 저녁이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저녁 늦게까지 파티를 벌이는 수많은 스페니쉬 젊은이들을 뒤로하고 그 다음날 먼걸음 생각에 일찍 잠을 청했다. 홀로 떠나는 오랜 걷기 여행에 익숙한 베테랑 답게 곤히, 아주 푹 잠이 들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얍잡아 본 댓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내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전혀 모른체로 그렇게..... (산티아고 순례길: 둘째날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