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8장에서 사도 바울이 로마에 도착한 경로를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며 시칠리아섬과 유럽의 작은 섬나라 몰타섬까지 갈 예정의 여행이었기에 남쪽으로 내려 가면서 그간 이탈리아에서 가보고 싶었던 도시들을 몇군데 들렀다. 그중에 하나가 나폴리였고 또 다른 한곳은 소렌토였다. 소렌토에 가게 된 이유는 순전히 Amalfi Coast를 충분히 보기에 스케줄상 적당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옛날 기아차에서 소렌토라는 차를 출시 했었는데 아마 이탈리아 도시에서 이름을 따온 듯 하다. 현대-기아 그룹 차에 도시명으로 된 차량들이 몇개 더 있는데 그중에는 하와이섬의 도시 코나와 콜로라도 스키 리조트의 도시 텔루라이드가 있다. 그러고 보니 대단히 유명한 여행지는 아직 아닐지라도 숨겨진 보석과도 같은 도시들로 차를 이름하였다.
사실 나폴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탈리아 피자가 유래 된 도시 답게 피자였다. 나폴리 축구팀이 우승을 앞둔 해였기에 그랬는지 도시는 정신 없게 축구에 관련된 장식들로 넘쳐 났고 그 팀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를 기리는 조형물로 인해 오히려 도시 미관을 헤치는 듯 했다. 어떤 신을 모시는 것을 연상시킬 정도로 디에고 마라도나는 많은 나폴리인들에게 우상 중에 우상인 듯 했다. 그래도 이왕에 나폴리에 온 김에 나폴리를 더 많이 보려고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아침 11시에 check out이기 때문에 짐은 숙소에 두고 가벼운 몸으로 나폴리 이곳 저곳을 누볐다. 나폴리가 바닷가와 가까운 줄은 알았지만 조금 걷고 나니 바다가 보이는 것을 보고 놀랐다. 나폴리 도시의 건물들 사이로 걸어다닐 때는 몰랐는데, 바닷가로 나오니 세찬 강풍이 불고 있었다. 건물들이 쎈 바람을 막아주었는지 아니면 내가 바닷가에 도착함과 동시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지는 알길이 없었다. 이미 밀란과 베니스 그리고 로마의 밤 마저도 보고 온 터라 나폴리라는 도시에서는 대단한 감흥을 받지는 못했다. 그런데 나폴리는 어쩌면 이탈리아의 맛집들이 많이 모인 곳 중에 하나 일 수도 있겠다. 다른 도시들에서는 식당 앞에 줄을 길게 서 있는 모습을 목격하지 못했는데 나폴리에서 만큼은 점심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식당 앞에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을 종종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왕에 사 먹을거면 맛있는 것을 사먹자는 주의이기 때문에 나폴리의 맛집을 찾아 다녀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점심은 Nennella라는 곳에서 먹기로 했다. 숙소에서 짐을 찾은 후에 11시 반 경 정도에 경사진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고 있는데, 식당 가까이쯤에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기다리는 줄이 아니기를 바랐지만 한편으로는 기다리는 줄이 있어서 좋았다. 이정도 줄이면 맛집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정확히 정오에 오픈을 하는 식당인가 보다. 약 20분을 기다리니 줄에 서 있던 우리 모두를 식당 안쪽으로 안내했다. 신나는 이탈리안 배경음악과 함께 이탈리아인들의 대화가 어우러져 멋진 음향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 식당 내부에 자리했다. 내가 알아듣는 말이라고는 고작 ‘Grazie’ (그랐지에)라는 고맙다는 말이 전부였지만… 가성비가 좋은 식당이었는지 13유로를 내면 코스 메뉴에서 2~3개를 골라서 주문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인들은 정말 흥이 많은 민족일까 아니면 나폴리 지역 분들이 특히 열정적인 것일까?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가타를 치고 노래를 하면서 식당에 온 손님들의 흥을 돋우는 분들이 계셨다. 코스 요리 중에 첫번째로 나온 것은 해물 파스타류였다. 나중에는 샐러드와 돼지고기 스테이크도 나왔다. 이렇게 푸짐하게 나오는데 13유로 밖에 안하다니…. 이곳에 사람들이 줄 서 있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세상 어느나라 사람이든지 간에 가성비가 좋은 음식이나 물건을 안 좋아할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냥 싼 음식이 아니라 정말 맛있고 푸짐하면서 말도 안되게 저렴한 가격… 밥을 다 먹고 나오니 밖에는 내가 섰던 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긴 줄이 서 있었다. 아마도 한 10배가 넘게 긴 줄이었다. 물론 식당은 큰규모의 식당이었지만 그 줄을 기다려서 점심을 먹으려면 한시간은 족히 걸릴 듯 싶었다. 식당 문을 열기 전에 와서 기다린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여행와서 밥먹는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도 사실 아까운 시간일 수가 있다.
식후에는 나폴리에서 커피를 잘 한다고 알려진 카페에 들렀다. 내가 언제부터 커피를 즐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주 마시는 시기가 있었다가 한동안은 한참을 멀리하는 것을 반복하는 듯하다. 유럽을 여행할 때는 나도 모르게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으면 들러서 카푸치노나 라떼 한잔 씩을 즐겼다. 나폴리에서도 일부러 인기있는 카페를 검색하여 가봤는데 생각보다 별로였다. 그런데 여행자들의 동선이 비슷해서 그런 것일까? 그 전날 유명한 pizzeria 앞에서 셀피를 찍으며 Pizza 주문을 기다리던 사람을 그 길에서 또 우연히 만난 것이다. 한국분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홍콩에서 왔단다. 한국말을 잘 하길래 어떻게 그렇게 한국말을 잘하냐고 물어보니 한국말을 대학 시절에 전공했고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잠시 했다고 한다. 이 홍콩분은 영어보다 한국말이 더 편했는지 한국말로만 대화를 했다. 이름이 정녕이라는 홍콩 여자분인데, 내가 아는 한국분의 이름과 똑같아서 혹시 한국사람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분은 시칠리아 섬에 갔다가 홍콩으로 돌아간단다.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렇게 이탈리아에 왔다는데 나 또한 혼자 여행하는 것을 즐기지만 그런 류의 사람이 또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나 또한 시칠리아섬에 가고 있는 중이었기에 또 마주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난 사도 바울이 3일간 머물렀던 시라쿠사에 가고 그분은 Palermo로 가는 일정이었기에 또 마주치게 될 일은 없을 듯 싶었다.
같은 나라에 같은 나라말을 해도 지역 출신에 따라 특징적인 것이 정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선입견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난 잠시 머문 나폴리였지만, 나폴리인들은 왠지 다른 이탈리아인들과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이 다름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것이 아닌 그냥 다른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폴리 자체의 도시의 외관을 보고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나도 잠시 스쳐간 나폴리인들로 부터는 뭔지 모를 감흥을 받았다.
로마에서 나폴리에 도착했을 때 하차했던 버스 정류장에서 소렌토로 갈 버스를 기다렸다. 나폴리 중앙역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기에 가까이 있던 서점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책구경을 했다. 교보문고 수준은 아니더라도 지하층까지 있었던 꽤 큰 규모의 서점이었다. 무언가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기에 내겐 서점만큼 좋은 곳이 없다. 스페인에서 만난 쇼코가 추천해 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도 있었다. 내가 추천해 준 책은 반드시 꼭 읽겠다기에 성경책을 사서 읽으라고 했는데, 나 또한 읽겠다고 했으니 별로 읽고 싶지는 않아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어 볼 생각이었다. 어느덧 버스 탈 시간이 다가 왔다. 버스에는 거의 나밖에 없었다. 버스에 들어서서 뒤로 쭉가면 맨뒷쪽 정면에 있는 자리가 내 자리였다. 얼마 있다가 내 옆에 어떤 여자분이 앉았다. 지정석으로 되어 있기에 자신의 자리라고 배정되어 있는 곳에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이분은 아르헨티나에서 왔는데 영어를 정말 잘했다. 마치 미국에서 온 사람이라고 착각이 들 정도였다. 왜 이렇게 영어를 잘 하냐고 물으니, 아르헨티나에선 본인 세대의 사람들은 그 정도는 한단다. 내 경험상 꼭 그렇지는 않았다. 지금 시대에 어린 세대 사람들이 나이든 세대 보다 영어를 꽤 잘하는 것은 세계 어디를 가나 확연한 사실이지만, 한 국가에 같은 나이 또래들 중에도 더 출중하게 잘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카밀라는 영어가 모국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실력이었다.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출신의 카밀라는
나폴리 여행 후 그리스를 들렀다가 언니가 살고 있는 폴란드에 갈 예정이란다. 여행 중에 아르헨티나에서 온 사람들을 종종 만나는데, 한편으로는 나라가 파산상태로 엉망인 상황이 안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지금 형편 없는 환율의 아르헨티나 페소로 어떻게 여행을 하는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연기자가 꿈인 카밀라는 많은 아르헨티나 청년세대들과 동일하게 어떻게 이 파국을 헤쳐나갈 것인가 하는 듯 싶었다. 영화배우 같은 외모의 소유자였고 영어도 잘 하였기에 할리우드에 진출 할 생각은 없냐고 물었다. 그리고 내게 있었던 재미난 일화를 소개했다. 내가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하려고 미국을 떠나던 날은 2022년10월2일 주일이었다. 주일 예배를 드리는 중에 내 바로 앞에 있는 분의 성경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가죽 성경 표면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바로 ‘Holly Wood’라고 말이다. 나는 왜 성경에다가 ‘Holly Wood’라고 써 놓았을까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의 이름이 Holly였고 성이 Wood 였던 것이다. 그래서 혹시 결혼을 Wood성을 가진 분과 결혼을 해서 이 Holly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어쩔수 없이 Holly Wood가 된 것일까 해서 물어보니 자신의 아버지 성이고 자신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Holly라고 이름을 지어서 Hollywood가 되었단다. 이분의 아버지가 할리우드 영화 광팬이셨나 보다. 이 얘기를 카밀라에게 해 주니 어쩌면 이것이 자신이 할리우드에 진출해야 한다는 뜻 일수도 있겠다며 좋아라했다. 한시간 이상을 그렇게 옆에 앉아서 가야했기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친해졌고 나중에는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에 오게 되면 자신에게 꼭 연락을 하라며…. 당시 내가 파타고니아 Rain Jacket을 입고 있었는데 파타고니아에 가라는 뜻인가 보다며 말하고 웃었다. 나 또한 아르헨티나를 좋아하고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아닌 다른 곳을 방문하러 한번 더 가보고 싶기에 그렇게 하겠노라고 했다. 버스 창밖으로는 아말피 코스트가 이것보다 더 아름다울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너무 아름다웠다. 카밀라와의 대화를 멈추고 해가 지고 있는 바다 풍경을 영상에 담아내었다. 반도 국가 이탈리아 안에 있는 또 다른 작은 반도의 도시 소렌토에는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좋은 대화를 나누며 그렇게 도착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