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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en Camino!): 포르투갈 길 (Tui에서 O Porrino 구간 18.7 km)

by 어진윤 2024. 2. 21.

2023년 3월 11일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check out을 하려고 나와보니 딱 봐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려는 복장을 한 부부가 눈 앞에 나타났다. 양손엔 하이킹용 스틱 들고 있었다. 에콰도르에서 오신 분들이었는데, 남편은 예전 디에고 마라도나가 뛰었던 아르헨티나 축구팀 보카 주니어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아르헨티나에서 온 줄 알았다. 예전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갔을 때에 디에고 마라도나를 캐릭터화한 큰 동상인형을 그 지역에서 본 적도 있어서 보카 주니어가 적어도 아르헨티나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선 얼마나 인기가 있는 팀인지 알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에콰도르 분들도 좋아하는 것을 보니 이 팀이 남미 전체에 두루두루 인기가 있는 팀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국에선 어렸을 때에 육상선수로도 활동 했었고, 미국에서도 고등학교 체육 선생님으로부터 육상부에 들어 갈 것을 권유 받았던 나였기에 운동을 좋아했고 그래서 여러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었다. 내가 처음 그 체육 선생님을 만났을 당시 그분은 우리 고등학교에서 5년째 가르치고 계신 분이었는데, 자신이 5년간 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중에서 내가 가장 빠른 학생이라는 말로 나를 설득하셨다. 그런데 나는 방과 후에 남아서 해야하는 훈련 등도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고 또 달리기 선수를 할 생각이 별로 없었기에 잠시 생각만 해 본 후 그 진로를 접었었다. 운동신경 좋고 달리기가 빨랐어서 지금 내게 도움이 된 것이 뭐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운동신경이 좋았기 때문에 이렇게 오랜 세월을 부상 없이 걷는 여행도 수도 없이 다녀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운동을 좋아했기에 여러 스포츠에 대해 가지고 있는 해박한 지식이 있어서 어디를 가던지 그 지역 사람들과 어렵지 않게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는 장점도 있는 듯하다. 아무튼 이 에콰도르 남자분은 보카 주니어가 세계에서 최고의 축구클럽이라고 주장하였다. 

 

요즈음엔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한국에 살 때만 해도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이를 물어보는 것은 실례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이를 물어보는 것이 당연한 문화와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됐다. 나이를 알아야 서열 정리가 빠르게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것이 당연시 되는 질문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사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이를 잘 묻지 않는다. 서로 좀 아는 사이가 되면 몰라도, 처음 본 사람에게 나이를 물어보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 되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정말 궁금하면 물어보는 사람들도 더러 있기도 하다. 이분들도 나의 나이에 대해 어지간히 궁금 하셨나 보다. 동양인이 아닌 외국 사람들이 동양인의 나이를 가늠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 또한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나를 굉장히 어린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사실 한국 사람들이 나를 보면 그냥 내 나이로 본다. 아니 안타깝게도 어쩔 때는 내 나이보다 더 늙게 보는 사람이 가끔 있기도 하다. 이스라엘에 강의를 하러 갔을 때엔, 내가 강의를 하러 온 사람인 줄 안 어떤 한국분이 나보고 50대냐고 해서 충격을 받은 적도 있다. 아마도 내가 강의를 하러 왔으니 교수이겠거니 하고 나이를 더 높이 봤을 것이라고 위안을 삼았다. 그때 쓰고 있던 안경은 정말 교수들이 쓸 법한 안경이었다. 그리고 대학교 시절 부터 있어 온 세치 머리도 그 충격적인 말을 듣는데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 남미 분들에게는 난 굉장히 어리게 느껴졌나 보다.  어떻게 저렇게 어린 나이에 홀연 단신으로 여행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이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 중에 길을 멈추고 잠시 만나러 가는 중이라던 당시 포르투갈 Vigo 근처에 살고 있다는 한국인 친구 치과의사를 소개팅 시켜 줄려고 그러는지 나이를 계속 묻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내 나이를 알려 주었더니, 갑자기 나와 영어로 대화를 하다가 옆에 있는 숙소 스태프들과 자기들끼리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이 아닌가? 에콰도르 사람들이라서 이미 스페니쉬를 할 수 있는 것을 난 깜빡했다. 스페인에서는 에콰도르인들도 나와 같은 외국인이지만, 그들이 쓰는 언어 자체가 굉장히 광범위한 지역에서 사용 되는 언어라서 그 먼 타국에서도 통한다는 것이 잠시 부러웠다. 그런데 나 또한 스페니쉬를 쓰는 사람들이 많은 미국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고 15년여 전에 칠레에서 산 스페니쉬-영어 사전으로 몇일간 공부하고 있지 않았던가? 내가 그 에콰도르 여자가 뭐라고 했는지 알자, 그 여자는 굉장히 당황해 했다. 말하자면 그 여자가 말하길 “생긴것은 얘같이 생겼는데….”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이 귀에 들어왔다. 살면서 스페니쉬권 나라들을 다섯개국 정도 이런 저런 이유로 여행을 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미국에서 스페니쉬권 사람들을 많이 접해 봐서 그랬는지 몰라도 나 또한 그 말을 듣고 정확하게 이해했다는 것에 좀 놀랍기도 했고 적잖이 뿌듯했다. 내게 통변의 은사가 있나 하고 잠시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곳 숙소 스태프도 내가 그 에콰도르 여자가 한 말을 정확하게 얘기하고 그 여자분이 멍해진 모습을 보고 박장대소를 하였다.  그 여자가 한 말은 별로 좋은 말을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못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기들만 이해하는 말로 얘기한 것인데 정확히 알아들었으니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스태프의 친절한 안내도 있었기에 사실상의 산티아고 순례 여정 첫날이라고 할 수 있는 첫걸음을 힘차게 내딛었다. 방금전 스페니쉬를 이해하는 능력과 어느 정도의 간단한 스페니쉬를 유창한 발음으로 해서 그랬는지 이들은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듯한 미국에서 온 동양남자를 숙소 밖에 까지 나와서 환한 웃음 띤 얼굴로 배웅해 주었다. 내가 골목을 돌면서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엔 어디로 가야 산티아고 순례길을 이탈하지 않고 잘 가는지 알려 주기 위해 곳곳에 이정표가 있다. 그래서 그것만 보며 가도 길을 잃지 않고 갈 수 있는 것이다.

 

첫째날 에콰도르 부부와 헤어진 후에 찍은 사진이다. 보는 것과 같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는 길 곳곳엔 파란색 바탕과 노란색 표시로 어디로 가야하는지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가끔 너무 오랫동안 이 표시가 안 나올때는 잘가고 있는데도 혹시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잠시 스쳐지나가는 순간들도 있었다.

 

그런데 가끔 가는 길이 공사를 하는 곳도 있기도 하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는 행렬이 없어 나 혼자 오래 걷는 중엔 멍을 잠시 때리다가 이정표를 놓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내가 걷던 첫날엔 숙소 스태프가 가라고 한 길을 따라서 이정표를 보면서 갔는데도 가는 길에 공사를 하고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적도 있었다. 비슷하게 출발을 했을 그 에콰도르 분들은 어떻게 했을까 궁금해 졌다. 사실 그분들은 의사소통이 자유롭기 때문에 길가는 사람 누군가에게 묻기도 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보다 더 늦게 출발했고 나보다 걸음걸이가 느린 그분들이 나보다 훨씬 앞서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들어선 길이 원래 가는 길이었더라도 공사구간 이어서 내가 좀 헤매기도 했고 그분들은 말이 통하니 가야할 길을 좀더 명확히 이해하고 갔기에 그랬을 것이라 생각됐다. 

 

원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만난 사람들은 행선지가 같기에 같이 걷게 될 때가 많다. 그런데 그 에콰도르 여자 분은 내게 실례되는 말을 했다고 생각해서 민망 했는지, 아니면 자신들이 만날 거라고 한 한국인 친구를 만나러 가야했는지 끝내는 헤어지게 되었다. 포르투갈에서 치과의사로 살고 있는 한국인 여자친구분이 Vigo에서 자신들을 픽업하러 오기에 잠시 이탈했다가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산티아고 길을 걷다가 차로 이동하는 것은 반칙 아니냐는 반농담을 건네고 나는 나의 갈길로 그들은 그들이 갈 길로 가게 되었다. 사실 나 또한 그들의 나이를 가늠 할 수 없었다. 여자 분이 훨씬 젊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나 또한 이 부부의 나이차가 얼마나 될까하는 궁금증이 자아날 때도 있다. 그런데 실례가 될 것 같아 물어보는 것을 참았다. 여자분은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것에 반해서 남자 분은 영어를 전혀 못했기에 나이차가 더 많이 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기도 한 것 같다. 내 경험상 영어를 외국어로 쓰는 나라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나이가 어릴 수록 영어 실력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에콰도르 부부와 헤어진 후 한참을 그렇게 혼자 걸었다. 이미 숙소 전체를 거의 나 혼자 썼고, 다음날도 겨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은 에콰도르에서 온 부부 밖에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다음 정착지까지 가서 이 길을 가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 한 당연히 혼자 이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걸었다. 비수기에 와도 너무 비수기에 왔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들이 없었다. 혼자 있는 시간들을 즐길 줄 아는 나였기에 별 문제는 안 되었다. 그래도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초행 길이고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포르투갈 길이라서 그랬는지, 이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나 뿐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내가 워낙에 짐을 많이 가지고 여행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빨리 걷고 싶으면 엄청 빨리 걸을 수 있기에 나보다 훨씬 일찍 길을 출발한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이들과는 대화를 잠시 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에게는 “Buen Camino!”라고 산티아고 순례길 인사말을  짧게 건네기도 하면서…. Buen Camino는 좋은 여행 길을 빌어주는 말이다. 그 길에서 누구를 만나든지 내가 아니면 상대방이 이 표현을 정말 많이 썼다. 나의 첫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이 Buen Camino가 되기를 바라면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뎠다. 혼자 쭉 걷게 될 줄 알았던 이 길에서 각기 특별하고 다른 인생의 무게를 지닌 순례자들을 만나기 시작하며 이 여행은 진정 Buen Camino가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