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에 내가 산티아고 포르투갈 루트를 걸을 때는 유난히 독일인들이 많았다. 유난히 라는 표현은 비교대상이 없는 첫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이라서 좀 그렇지만, 여러나라 사람들 중에 독일인들을 가장 많이 만났다.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만 독일인들을 많이 만난 것은 아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독일에선 휴가를 꽤 자주 혹은 길게 주는 것 같았다. 서유럽의 최남단이며 아프리카 대륙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 Tarifa라는 곳에서도 떼를 지어 다니는 독일인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인근에 있는 학교에 어학연수를 왔다고 했다. 회사에서 보내 준 것인데, 자기발전의 명목이라면 회사에서 비용까지 전부 다 대준다고 한다. 그러니 그들은 스페인어 공부 핑계삼아 여행을 근사하게 하고 있었다.
아무튼 독일인들은 왜 산티아고 순례길 중에 더 유명하고 바로 옆나라인 프랑스에서 시작하는 길을 마다하고 더 멀리와서 이 길을 걷는가? 프랑스하고 독일이 사이가 안 좋나?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포르투갈 길이 프랑스 길에 비해 굉장히 짧기 때문일 것이다. 휴가를 내서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달 동안 휴가를 내고 프랑스 길을 걸을 수 있겠는가? 또한 독일인들은 다른 민족들 보다 검소한 생활이 몸에 베어 있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는데, 상대적으로 더 저렴한 포르투갈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지금 이렇게 쓰면서 알게 된 사실들인데, 신기한 부분이 있다. 내가 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처음 사귄 친구와 마지막날 사귄 친구가 둘다 모두 독일인이다. 한명은 통일 독일 이전에 서독의 수도 역할을 한 Bonn 출신 친구인 Chris, 또 한명은 통일 독일 이전에 동독의 수도이며 지금의 수도 역할도 하고 있는 베를린 출신의 Julie. 한명은 남자였고 또 한명은 여자 였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재미있지 않은가? 극과 극의 사람들을 만나 친구가 되었는데, 이것이 산티아고 여정이 얼마나 다이나믹하고 버라이어티한 여행인지를 증명하는 단면인 것 같다. 첫날과 마지막날에 서독과 동독 수도 출신의 독일인 남자와 여자를 산티아고 길에서 걸으며 친구가 되었으니….
크리스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직장에 휴가를 내서 포르투갈 길을 걷고 있었다. 나보다 앞서 걷고 있는 중이었고 나이가 30대였는데 하이킹용 스틱을 사용하여 여행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내가 크리스를 만나게 된 것은 첫날 여행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된 시점이었는데,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아주 적은 양의 흩뿌리는 정도의 비였다. 고속도로 위로 지날 수 있는 다리 가기 직전에 내리막 길로 가는 곳이었는데, 나는 사진을 다리 위에서 찍고 이정표가 가르키는 그 내리막 길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덩치가 꽤 큰 백인 남성이 그곳에서 어물쩡 거리다가 이정표가 가리키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이킹 스틱과 배낭만 봐도 딱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있는 순례객이 맞는 것 같은데 다른 곳으로 가기에 옳은 길을 가르쳐 주다가 같이 걷게 된 케이스다.
유럽에서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인데, 내 경험상 유럽에서 사는 사람들 중에는 독일인들이 영어를 꽤 잘하는 편이었다. 네덜란드인들도 영어를 곧잘 한다고 생각이 되었다. 아마도 자신들의 모국어와 가장 근접한 언어군에 속한 언어를 가장 잘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 또한 언어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영어 말고 내가 할 수 있다고 하는 언어 중에는 일본어가 있다. 영어는 내가 미국에서 오래 살았기에 할 수 있는 언어이니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공부했다고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일어가 한국어와 얼마나 유사점이 많은 언어인가를 보면서 놀란 때가 많았다. 한국인들은 영어를 못한다는 것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니 사실 지금은 영어가 거의 세계 공용어가 되다 싶이 되어서 세계 어디를 가든지 젊은이들 중에는 영어를 못한다는 것에 콤플렉스처럼 여기는 애들이 있었다. 스트레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은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가르친 것도 있고 잠시라도 해외에 다녀 온 유학파가 많이 있어서 한국내에도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지만, 사실 평범한 한국인들이 영어를 힘들어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영어와 한국어는 완전히 다른 언어군에 속하여 있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으로 어순이 완전히 다르니 얼마나 어려운 언어인가? 내가 순차통역을 할 기회가 여러번 있었는데, 영어에서 한국어로 또는 한국어에서 영어로 통역을 할 때에는 어순이 달라서 말하는 자의 말을 다 듣고 이해한 후 한 말을 다 기억하여 다른 언어로 통역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중들 앞에서 하는 것이고 내가 순발력있게 정확하게 하지 못한다면 강의를 들으러 온 이들에게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기에 신경이 더 곤두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요즘엔 영어를 어느 정도 다 이해하기에 이중언어를 이해 할 수 있는 대중 앞에서 통역을 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편안한 자리에 앉아 마음 편히 강의를 들으면서 통역하는 사람이 가끔 자신이 알고 있는 더 정확한 단어로 통역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지적할 때도 있어서, 잘해야 본전일 때도 있다. 나 또한 통역하는 사람을 평가할 때가 있으니 할 말은 없다.
그에 반해 일어는 어순도 똑같고 많은 단어들이 유사한 것도 많다. 발음만 조금 다를 뿐 같은 한자에서 온 단어들을 쓰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어쩔 때는 한국에 여러 지역의 특이한 사투리가 존재하는 것처럼 바다 건너 좀 더 먼곳에 있는 곳이니 우리 나라말의 엄청 변형된 사투리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을 정도일 때도 있다. 어떤 제주도 방언은 한국인들도 정말 알아듣기 힘들다고 하니, 그런 생각이 든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일본어가 한국인들에게 그런 부분에서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질 뿐 일본어를 깊게 들어가서 공부하려면 그 언어가 얼마나 배우기 어려운 언어인가 또 한번 느끼게 된다. 우리는 한글이 있어서 좋은데, 일어는 아직도 수많은 한자를 쓰고 있으니 한자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내가 여러 언어를 접해 보고 공부해 본 결과는 어떤 언어도 결코 쉽게 공부할 수 있는 언어는 없다는 것이다. 얘기 한 것처럼 내 모국어가 어떤 언어인가에 따라서 공부하기가 조금 더 수월한 언어가 있을 뿐이다. 한번은 일본 후지산 근처에서 미국에서 온 듯한 여성을 만났는데, 완전한 미국인 영어라서 미국인임을 의심치 않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미국에서는 살아 본 적이 없는 노르웨이에서 온 여자였다. 영어를 미국인처럼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생활이 모두 다 영어와 관련된 것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고 얘기했다. 미국 영화와 쇼프로그램 등을 자주 봤단다. 물론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내가 앞서 얘기한 것과 같이 노르웨이 언어가 영어의 언어와 더 유사한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노르웨이 사람이 일본어를 나와 같은 시간을 들여서 공부한다고 가정해 보자. 개개인의 언어 습득 능력이 어느정도 영향을 주겠지만, 아마도 한국어가 모국어인 내 일본어 실력이 노르웨이 여자의 분의 실력 보다 더 낳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담이 너무 길었다.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국사람으로써는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것이니 괜찮다고 얘기해 주고 싶었다. 너무도 좋은 언어인 한국어를 이미 하고 있으니 감사해야 한다.
동행하는 친구가 있어서 좋은점 중에 하나는, 사진을 서로 찍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정표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려주는데, 99.310km가 남았다는 표식이 있는 이정표에 섰을 때엔 왠지 사진을 찍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9년도 3월10일 수요일은 내게 굉장히 중요한 날이기도 했다. 왠지 이 길을 걷는 것이 운명이었던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번호였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1999년 3월10일에 대해 나눌 것이다) 크리스 하고는 걷는 중에 같이 걷다가 따로 걷는 것을 반복했다. 목적지가 같으니 커피를 마시는 카페에서, 길 위에서, 그리고 어쩔 때는 숙소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크리스라는 친구와 헤어지고 한참을 걷는데, 오르막 길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캐나다에서 온 중국 아주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저렇게나 무거운 짐을 지고 여행을 하는 분이 있구나 하고 새삼 놀라웠다. 내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산티아고 순례길 첫날 여행을 마치고 도착한 숙소 다음날엔 많은 이들이 자신이 들고 온 배낭에 있는 물건들을 많이들 버린다고 했다. 이미 그 사실을 알고 간 나였기에, 이스라엘에서 떠나기 전에 읽던 책을 일부러 베들레헴에서 묵었던 호텔에 두고 오고 또 내 기념품들도 미국으로 돌아가시는 분께 다시 찾으러 가겠노라고 하고 맡기기도 했었다. 그렇게 짐을 가볍게 싼다고 했어도 계절이 아직 겨울일 때에 여행을 시작해서 부피가 두꺼운 옷들도 있었기에 내가 원하는대로 아주 가볍게 쌀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 혹시 프랑스길로 한달 이상 걸을 때에는 여름에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도 해 봤다. 여름에는 아무래도 옷이 얇고 부피가 작아서 더 가볍게 여행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왠만하면 여행하면서 본 사람들은 끝까지 여기저기서 만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분은 내가 점심 식사를 마친 식당에서 한번 본 후 다시 마주치지 못했다. 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서 가고 멀리 가고 싶으면 같이 가라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독일인 친구 크리스와 잠깐씩 같이 걸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무식하면 용감해서 그런 것일까? 처음 걷는 길에 겁도 없이 하루에 권장하는 거리의 두배나 되는 길을 걷게 되었다. 그래서 원래 계획이었던 하루 권장량의 거리를 걸었다면 오다가다 마주칠 수 있었던 중국인 아주머니는 첫날 이후엔 볼 수 없어서 그 큰 짐을 메고 여행을 잘 마쳤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 길을 걷고 얼마나 배가 고프셨는지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허겁지겁 드셨다. 에너지 소모가 대단한 여정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이 식당에 내가 들어선 것은 신의 한 수 였다.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에는 식사하는 타이밍도 잘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 어쩔 때는 내가 배가 안 고플때에 한참 후에야 다음 식당이 나오게 되는 마지막 식당을 지나칠 수도 있다. 그날 비는 아침부터 흩뿌리던 비였기에 Rain Jacket 하나를 입고 별수롭지 않게 걷고 있었다. 걷던 중에 왼쪽편에 식당 간판이 보였다. 아직 오전 11시도 안 된 시간이었기에, 들어갈까 말까를 망설였다. 아침을 이미 숙소에서 먹고 나온터라 원래 점심을 먹던 시간에 한참이나 못미치는 시간에 점심을 먹는 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그 간판에 써 있는 글귀는 나를 더 고민하게 만들었다. 다음 식당까지 몇킬로미터 동안 오랜시간 구경을 못하게 될 마지막 식당이라고 광고하는 것이었다. 에너지 소모가 많은 걷기를 하고 있기에 사실 먹으려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고, 비도 이전보다 더 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던 길을 멈추고 왼쪽으로 틀어버렸다. 아직 식당은 완전히 열지도 않은 상황.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데 이 식당에 들어오기를 참 잘했다 생각됐다. 왜냐하면 얼마 안 있다가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만 피한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 아침 11시도 안 된 시간에 쫄딱 비를 맞아 버리면, 걷는데 얼마나 불편 했겠는가? 나는 어차피 먹어야 하니 먹고 가자는 생각으로 아무 기대를 안하고 들어왔는데, 음식 또한 정말 맛있었다. 스테이크와 신선한 샐러드로 식사를 잘 마치고 나니, 한참 전에 언덕에서 잠시 지나가다 대화를 나눴던 캐나다에서 온 중국인 아주머니가 비를 쫄딱 맞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가? 내가 엄청 빠르게 걸었나 보다, 내가 식당에 도착해서 식사를 마치고 30분 정도 이후에야 이분이 들어왔으니…. 나는 비가 아직 새차게 내리고 있어서 비가 좀 멈추기를 바라면서 커피 한잔을 시켜 천천히 마시고 나왔다. 이 캐나다에서 온 중국 분이 식당에서 음식을 흡입하시는 것을 본 이후에는 아까 말한 것처럼 마주치지 못했다. 어디서 멈출 것이냐고 나에게 물어봤을 때에는 분명 그날의 권장 거리를 걷고 O Porrino에서 멈출 계획이었다. 그런데 O Porrino에 도착하자 마자 계획이 수정되어 그 다음날 도착하기로 되어 있던 Redondella까지 내친 김에 가기로 한 것이다. Tui에서 O Porrino라고 하는 곳까지는 18킬로미터 정도 되는 구간이다. 그런데 아침 일찍 숙소를 떠나서 그런지 빨리 걸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해가 지려면 오랜 시간이 남는 시간에 권장하는 거리에 있는 목적지에 도착해 버린 것이다. 아직 에너지도 충분히 있고 도착한 도시 자체에 별로 매력을 못느껴서 그냥 두번째 목적지인 Redondella라는 곳으로 향하였다. 아마 프랑스 길을 이렇게 걸으면 이미 엄청 빠른 속도로 간주 될 30일 보다도 더 빨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을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한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