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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 Redondela에서 Pontevedra 까지

by 어진윤 2024. 4. 12.

Ideas Peregrinas라는 첫째날 숙소 벽에 붙어 있던 권장하는 하루 걸음 거리 도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에 하루 권장 분량의 거리가 명시되어 있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처음 해 보는 거라서 요령이 없었는지, 욕심이 생겼는지 몰라도 권장 거리의 두배에 가까운 거리를 첫날에 걸어 버렸다. 물론 걷는 것 말고는 달리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막막할 수 있는 산티아고 순례 여정에서 하루 종일 걸어서 저녁 시간에 숙소에 도착하는 그럴싸한 스케줄 관리는 칭찬해 줄 만 할 수 있다. 그러나 첫날부터 많이 걸어버린 나머지 숙소에 도착해서 녹초가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다음날부터 발바닥에 생긴 물집 등으로 인해 걷는 여행이 좀 불편해 졌다. 가방도 작은 크기의 가방이고 적은 양의 소유물들을 가지고 왔지만, 아직 추웠을 때인 2월초에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여행 중이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겨울 옷들도 챙겨와서 가방의 부피와 무게는 제법 되었다. 3월 중순쯤 되는 때였던 그 시기엔 비도 가끔씩 오다가 안 오다가를 반복하기까지 해서, 첫날 숙소에 도착해서는 거의 모든 것이 젖어 있었다. 다행히도 여행 시작전에 비가 많이 오기로 소문난 시애틀에서 파타고니아 rain jacket을 아주 가볍기도 하고 꾸겨서 아무렇게나 가방에 쑤셔 넣어도 주름이 지지 않는 것으로 구입을 했기에 온 몸이 젖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다. 그래도 바지와 신발은 비를 쫄딱 맞아서 숙소에 있는 히터에 너도 나도 자신의 젖은 물건을 올려서 말려 놓지 않으면 안 되었다.  

 

비수기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북적북적 하지는 않았던 숙소에는 그래도 사람들이 꽤 있었다. 사람들이 북적북적 하지 않은 것이 좋을 때도 있는데, 바로 이와 같은 때였던 것 같다. 비를 쫄딱 맞고 들어오고도 샤워하는데 줄을 서지 않아도 되고 또 방을 혼자 쓸 수 있는 확률도 높아진다. 물건을 히터에 말려야 할 때도 수많은 경쟁자(?)들과 눈치 싸움을 할 필요도 없다. 그래도 사람이 있어야 제맛이기는 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이던 어디를 가던지 모든 만남이 뜻깊은 만남이 될지 아닐지는 본인이 하기 나름이고 또한 자신의 선택 사항이기도 하다. 같은 숙소에 머물러도 어떤 이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한다. 나는 그때 그때의 상황과 어떤 사람들인가에 따라 혼자 있기를 선택하기도 하고 어울리기를 선택하기도 한다. 아마 우리 모두가 다 그렇지 않을까 한다. 그 숙소엔 대만에서 이 여정에 참여하러 온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다. 특이한 점은 자전거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전거는 대만에서 가지고 왔다고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꼭 걸어서만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도착을 해도 공식 증서를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같은 거리를 가도 자전거로 할 경우 걷는 것보다 훨씬 힘이 덜 들기에 자전거로 여행하는 자들에게는 더 긴 거리를 지나서 종착지에 도착해야 증서를 주기도 한다. 물론 증서를 따려고 이 길을 걷는 것은 아닐지라도 혹시 하나의 기념품으로써의 가치는 있을 수 있으니 참고하시라. 같은 동양사람을 만나서 반가운 것이었을까? 이들 또한 처음 본 나를 친근하게 대했다. 다민족이 모여사는 미국의 대도시들에서 오랜 이민 생활을 해 왔기에 세상 어느 민족을 만나도 낯설지 않은 나이지만, 나와 비슷하게 생긴 동양인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마침 저녁 시간에 도착을 했을 때에 이들은 어디에서 구했는지 모를 라면 같은 것을 먹고 있었다. 집을 떠나온지 이미 한달이 지난 시점에서 라면을 구경 못한지 오래된 시기라서 어디에서 구했는지 궁금했다. 오랜 장거리 걸음으로 많이 피곤하기도 했고 비도 오고 있어서 어디서 구했는지 알 수 있어도 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들 말에 의하면 숙소와 가까운 곳에 마켓이 있다고 했다. 내일 걷다가 먹게될 간식을 살 겸 마켓에 가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을즈음 불가리아에서 왔다는 통통한 여자분이 저녁식사를 준비하고는 여행에 동행했던 독일인 크리스와 나를 초대하는 것이 아닌가. 몸을 녹여줄 따뜻한 수프와 신선한 야채로 간단한 저녁이었지만, 먼 타국 땅에서 긴 여행 끝에 생전 처음 보는 이방인으로 부터 받는 대접이라서 더 뜻깊게 느껴졌다. 불가리아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이 있는 여자분으로써 러시아에서 쓰는 알파벳이 원래는 자기 나라의 유산이며 러시아가 빌려 쓰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러시아 문자에 대해서 얘기를 할 때마다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계속 불가리아 문자라고 정정해 주었다. 

 

이 여자분은 그렇게 친철해 보이지는 않았는데, 왜 나에게 이런 호위를 배푸시나 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느낀건데, 아마 나와 좀 친분이 있는 독일인 크리스에게 관심이 있지 않았나 싶다. 왜 사람들에게 직감 같은 것이 있지 않은가? 나중에 이 직감은 사실인 것이 확인 되었는데, 그 다음날 떠나는데 이 여자가 크리스 옆에 바짝 붙어서 계속 여행을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이들의 걸음 걸이가 너무 느리게 느껴지기도 했고, 이미 둘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감지 되어서 앞서 걷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만난 크리스가 말하길 이 여자분이 원래 가려고 했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산티아고 종착지까지 가자고 제안을 하고 계속 설득을 했다고 한다. 크리스는 끝끝내 그 설득을 뿌리치고 자신이 원래 가려고 했던 길로 온 것이었다. "This is my camino" 라고 하며 자신이 계획한 산티아고 여정에서 다른 곳으로 이탈하지 않을 것임을 확고히 한 듯 했다. 우리네 인생길에서도 원래 가던 정도에서 이탈해 보라는 유혹의 수많은 자붐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길을 걷기 전에 읽던 John Bunyon의 Pilgrim's progress를 크리스에게 전해 주려고 했는데, 산티아고 여정 중에는 가방에 몇그램의 차이도 큰 차이를 낸 다면서 극구 사양하였다. 이 친구는 심지어 단 한걸음이라도 낭비하지 않으려 대각선으로 가는 길이 짧으면 그길이 보편적인 도보길이 아닐지라도 그곳으로 걸었다. 여행을 하며 가방 무게를 줄이면 줄였지 더 늘리는 것은 산티아고 여정에서는 자제를 해야 하는 부분인 줄 알기에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난 이 좋은 책을 산티아고 여정 끝날 때까지는 누군가에게 전해 주자는 사명감에 차 있어서 전해 주고 싶었는데, 이친구는 나중에 독일로 돌아가서 사서 읽겠노라고 했다. 결국엔 그 여정에서 만난 다른 독일인 친구인 줄리에게 전해 주었다. 줄리는 이 책 제목만 보고는 산티아고 여정에 대한 가이드책인 줄 알고, 왜 이 책을 여행이 다 끝난 지금 주냐며 핀잔을 주었다.  한국어 제목으로는 천로역정으로 알려진 존 번연의 책은 존 번연이 감옥에서 수감 생활을 할 때에 쓴 책으로 알려져 있다. 주인공 크리스천도 인생의 여정에서 수많은 난관에 맞닿드리게 되는데, 산티아고 여정의 짧은 길도 인생을 미니어쳐화(?)한 것 아닌가 싶다. 

 

걷고 또 걷고 걸어서 다음에 쉬어가게 될 도시까지 가게 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이제는 첫날의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일찍 도착을 해도 그 도착한 도시에서 무조건 쉰다. 그리고 그 도시를 느껴 본다.사실 이제는 더 걸으라고 해도 첫날에 무리를 한 탓에 더 걷는 것은 발과 다리에 미안한 일이 됐다.  이곳은 Pontevedra라는 도시. 도착하자 마자 찾은 곳은 숙소보다 먼저 식사할 곳이다. 숙소에 다 가서 주변에 먹을 곳이 변변치 않을 수도 있고 또 점심시간도 이미 좀 지난 시간이라서 지나가는 곳이 상대적으로 번화가 같아서 점심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먹는 것에 낙을 두고 살지는 않지만, 이왕에 사 먹을거면 잘 먹자는 주위이기에 가격은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어서 들어갔는데, 이미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서 그런지 한산하였다. 그래도 이집이 음식을 잘하는 집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기에, 내가 좋아하기도 하고 안전한(?)메뉴로 생각되는 스테이크를 시켜 먹었다.

 

스테이크를 시켰는데 fries도 같이 나왔다. Fries는 원래도 잘 안 먹는 음식 중에 속하기에 다 남길 수 밖에 없었다. 신선한 야채와 스테이크는 정말 이 식당에 오길 잘 했다 싶었지만, 그 상황에서 어떤 음식을 먹었던 들 안 맛있을 음식이 있었으랴. 레드 와인은 스테이크 먹을 때 가끔 곁들여서 소량을 마신다. 식탁 위 오른쪽이 내 산티아고 여권.

 

잘 먹으면 뿌듯한 마음이 든다. 장시간 걷는 여행이기에 여행 중에 잘 먹는 것도 지혜로운 것이다. 그 먼곳까지 가서 돈을 좀 아끼겠다고 돈이 있으면서도 본인이 선호하지도 않는 곳을 단지 싸다는 이유로 들락거리거나 봐야 할 것을 못보고 다니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없을지 기약이 없는 장소인데, 그곳에서만 보고 느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하는 것을 추천. 그날이 마침 주일이기도 해서 아무리 스페인어로 하는 예배이겠지만, 교회를 찾아 방문을 했다. 노래는 어떤 면에서 세계 공용어이다. 찬양이 스페인어로 불려지고 있었어도 그 찬양에 은혜를 받기도 하니 말이다. 아니 어떨 때는 내가 이해하는 언어의 찬양보다 더 큰 은혜를 받을 때가 있다. 설교는 뭔 말인지 전혀 모르겠어도 그날 본문 말씀이 어디인지는 짐작할 수 있기에 그 말씀을 나 스스로 묵상하기로 했다. 그날 목사님이 설교하시면서 뒷 배경 스크린에 1 Timoteo 3:15 이라고 되어 있었기에 아마도 디모데전서 3:15절 말씀인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라는 말씀이었다. 어떤 때는 목사의 장황한 설교보다도 그냥 나 혼자 한 구절 묵상하는 것이 더 좋을 때가 많다. 그날은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가 안 되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지만, 한구절을 곱씹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