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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인연

by 어진윤 2024. 4. 16.

상쾌한 이른 아침 시간에 숙소를 나서려고 일어났더니, 3~4명의 그룹으로 온 국적 불명의 아가씨들도 이미 나갈 채비를 마치고 신발 끈을 매고 있었다. 산티아고의 묘미는 역시 아름다운 거리를 보며 걷는 것이기에 아프지 않은 이상 숙소에 오래 머무를 이유가 없다. 숙소를 나서니 내 앞에 알록달록하게 옷을 입은 아저씨가 멈추어 서서 스마트폰을 보면서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가방의 크기는 내 것의 거의 3배로 보였다. 어떻게 저렇게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매고 이 긴 걷기 여행을 할 수 있나 하고 생각하며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른 아침의 텅빈거리와 상쾌한 공기 그리고 아름다운 스페인 동네 마을 풍경은 지금까지 오래 걷기 여행으로 쌓여 온 피로를 날리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한국이나 미국에서의 풍경과는 너무도 다른 것 자체가 좋았던 것일까? 별것도 아닐 수 있는 동네 풍경 사진 여러장이 아직도 내 스마트폰에 많이 저장이 되어있다. 심지어는 동네 개들이 나를 향해 짖어 대는 것이나, 닭 한마리가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을 동영상으로 찍었을 정도다. 어쩌면 비수기에 도착한 여행에서 사람 구경을 못할 때가 많아서, 어떤 생명이 있는 존재가 나타났을 땐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반가워서 그렇게 찍었는지도 모른다. 

 

종착지인 산티아고까지 60여 킬로미터를 남겨 놓은 시점에서 걷던 중에는 약 2000년여전 로마시대부터 존재했던 길을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수천년 전에도 누군가가 걸었을 법한 산속의 길들을 걷다가 보면 주변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이곳을 걷다가 지친자들은 어떻게 쉼을 얻었을까하고 궁금해지기도 한다. 지금은 오랜시간을 걷다가도 가끔 마을이 나오기도 하고, 순례자들을 위해 일부러 숙소와 식당들을 운영하고 있는 곳도 있는데 말이다. 쌀쌀한 아침부터 걷기 시작을 했고, 비가 오다가 안오다가를 반복하는 날이었다. 오랜 걸음 끝에 드디어 좀 쉬고 싶어지는 아름다운 마을에 도착을 했다. 오래 걸었지만,그래도 더 맛있는 곳에서 먹고, 더 쉬고 싶어지는 곳에서 쉬려고 좀 더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 들어가서 주문을 한 후 얼마 안 있다가 첫날부터 계속 마주치면서 여행을 했던 독일인 친구 크리스가 나타났다. 3~4일 여행하면서 잦은 빈도로 마주친 것에 비하면은 오늘의 만남은 꽤 오랜시간이 흐른 후에 만나게 된 것이라서 더 반가웠다. 추운날이라서 몸을 따뜻하게 녹여 줄 수 있는 따뜻한 야채 수프와 티를 주문해서 케잌 같은 빵과 같이 먹었다.

 

독일인들을 유독 많이 만났던 포르투갈길 여행이었지만, 사실 전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을 만났다. 체코,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미국, 멕시코, 에쿠아도르, 대만, 캐나다, 폴란드 등등 그야말로 세계 각지에서 다 왔다. 나이대와 직업도 그야말로 정말 다양했다. 그런데 산티아고 순례길이 유명해서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한국인들은 한명도 만나 보지를 못했다. 아마도 포르투갈에서 국경을 지나 스페인으로 들어가는 길보다는 프랑스에서 시작해서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 가장 유명한 길이라서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포르투갈길에선 한국사람들을 볼 수 없었던 것이리라. 한국 사람을 못만난 것도 신기했고, 미국인을 딱 한명 만난 것도 그랬다. 이날 뿔이 멋지게 나 있는 황소들이 모여있는 곳을 지나칠 때 쯤 소들을 구경하고 있는 오래곤 출신 미국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도 미국에서 살았다고, 미국인을 타국에서 만나면 반갑다. 미국에서도 오래 살았고, 미국여행을 많이 한 편에 속하기에 어디 출신이든지 상관 없이 금새 그곳과 그곳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오레곤 또한 수도 없이 많이 다녀봤다. 미국에서 동서로 된 대륙 횡단도 4번을 했고, 남북을 횡단한 것은 그보다 더 많이 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워싱톤주를 가거나 돌아오려면 오레곤을 필히 지나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레곤주의 또 다른 매력은 뉴햄프셔, 델라웨어, 몬태나, 알라스카 등과 더불어 판매세가 없는 주이기 때문에, 오레곤에 꼭 갈일이 있고 가격이 꽤 나가는 물건을 꼭 구입할 때가 되었다면 판매세가 없는 오레곤에서 사는 것도 좋은 생각일 수가 있겠다. 나 또한 랩톱과 슬립핑백 그리고 에스프레소 기계 등을 그곳에서 구입했는데, 아마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에서 구입했다면 지금 환율로 판매세로만 50만원 가량을 더 냈을 것이다.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가 좀 길어졌다. 

 

두사람이 같은 언어를 한다고 꼭 그 두사람의 사이가 좋아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는 없듯이, 오레곤에서 온 미국인과도 그리 오랜시간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어쩌면 서로 너무 잘 이해하는 언어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서 오는 갈등도 있지 않는가? 서로 말이 안 통했다면 오히려 더 좋아질 사이들은 없을까? 물론 말이 서로 통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겠지만, 어떤 때는 너무 말이 많아서, 쓸데 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고 그것을 다 알아 들어서 기분이 상하고 갈등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레곤 출신 미국인과 헤어지고 한참을 지난 시점에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포르투갈 출신 이사벨을 만났다. 포르투갈에서 농업에 종사하다가 인생에 많은 질문들을 가지고 여행을 시작한 친구였다. 자신이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친구였다. 그래서 난 그 친구에게 너는 영어를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얘기를 해 주었다. 넌 이미 훌륭한 포르투갈어를 구사하고 있으며, 너가 하고 있는 모국어 외에 다른 나라 말을 못한다고 자괴감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난 영어 컴플렉스는 한국인들이나 일본인 등 동양인들의 전유물인 줄 알았는데, 오랜시간 영어의 전세계적인 공용어화로 인해서 이제는 유럽의 젊은이들도 영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자신의 모국어 이외에 다른 나라말을 한 단어라도 알고 있다면, 그것은 네가 자랑스러워 할 일이지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영어권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너의 나라말인 포르투갈어를 한마디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그것으로 인해서 괴로워하고 스트레스를 받냐고…. 그런데 너는 너의 모국어가 아닌 언어인 영어로 외국인인 나와 이렇게 의사소통이 가능하므로 네 영어실력은 너의 장점이지 단점이 아니라고 얘기해 줬다. 물론 영어가 세계 공용어인 것은 기정 사실이 된지 오래이지만, 각자 개인의 특기가 다 다른 상황에서 어떤이는 언어적인 능력이 뛰어나거나 자라온 환경이 뒷받침 되어 있어서 영어를 잘 하는 반면에 어떤 이들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포르투갈어는 브라질과 아프리카 일부 등에서도 모국어로 쓰는 언어이니 긍지를 가지라고 얘기해 주었다. 

 

지금 이 자판을 한글로 두드리면서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세종대왕의 600여년전 문맹률을 낮추려 평민들을 위해 쉬운 글자체계를 만들려는 결심과 한글을 발명한 그 당시 학자들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마치 컴퓨터 시대의 도래를 예견한 것과 같이 컴퓨터 자판 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 한글은 세계 언어학자들이 칭송하여 마다하지 않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가장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언어이다. 한류열풍과 시대와 역사적인 상황과 맞물린 한국어의 인기도 내가 한국어를 할 수 있고 쓸 수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더한다. 그러므로 한국 사람들도 영어에 컴플렉스를 갖기 보다는 이미 훌륭한 언어가 모국어임에 감사하면서 자긍심을 가지면 좋겠다.

 

인생의 진로를 놓고 고민하던 이세벨과는 꽤 긴 대화를 나눴다. 같이 걷던 중에는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서 비를 막아 줄 곳으로 피신할 곳을 찾아 가면서 친해졌다. 비가 그쳤다고 생각하고 잘 걷다가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일이 벌어져서 어쩔 수 없이 돼지 사는 곳인지 소가 사는 곳인지 알 수 없는 악취가 진동하는 외양간에 마을 주민 몇몇 분들과 비가 빨리 그치기를 고대하며 머물수 밖에 없었던 일도 있었다. 같이 길을 걷던 남녀가 부랴부랴 외양간에 들어와서 그랬을까? 그곳 주민들은 으례 우리 둘이 사귀는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나 또한 이세벨에게 동지애가 생겨서 그랬을까? 그 동네외양간에 모여 있는 사내들로부터 이세벨을 보호해줘야 할 것 같은 생각마저도 들었다.

 

어렸을 때는 연기자를 꿈꿨으나 지금은 가족을 도와서 농업을 하고 있는 이세벨에게 나 또한 진로를 놓고 고민하던 시절 누군가로 부터 듣고 도움이 되었던 조언을 해 주었다. 

 

  1. 자신이 사랑하기도 하고 잘 해낼 수 있는 일을 해라
  2. 내 스스로만 그 일에 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내 주변에서도 내가 하는 그 일에 대해 “너는 그 분야에 실력이 있다”고 인정하는 일을 해라
  3. 그 일이 돈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라 그 분야에 열정이 있어서 하는 일이기에 가끔은 금전적인 보상을 받지 않아도 기꺼이 기쁨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이세벨은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는지, 나에게 이메일 주소를 물어보고는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나와의 대화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면서…

 

이세벨과 헤어지고 도착한 숙소에서 맛있게 저녁을 먹을 곳을 물색한 후에 식사할 곳에 도착했다. 맛도 중요하지만 건강하게 먹는 것도 중요하기에 그럴싸 한 것을 시켰다. 그러나 시킨 음식은  내 기억 속엔 아직도 스페인 여행 중에 맛보았던 음식 중 가장 맛이 없는 음식으로 주저 없이 꼽을 수 있는 음식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그 음식 맛이 생각이 날 때면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스페인 여행 뿐만 아니라 전세계 여행중에 가장 맛없었던 음식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꼽을 수 있는 음식이다. 생선류보다는 육식을 더 좋아하지만, 건강을 생각해서 고른 메뉴였다.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이 생선을 어떻게 조리하기 원하냐고 해서 얘기해 준 것이 화근이었을 수도 있다. 그냥 식당에서 가장 인기있고 가장 잘 조리 할 수 있는대로 해 주면 될 것을, 그 생선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내게 물어보는 바람에 생선을 굽는 것 대신에 삶는 방법을 택했다가 생선 비릿내가 아직 남아 있는 생선을 꾸역꾸역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