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간은 아름다운 풍경과 길들이 곳곳에 많았던 길이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스마트폰을 꺼내 수도 없이 풍경사진과 영상들을 찍었다. 산티아고 길을 걷다가 보면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데, 사서 고생하는 외국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지 일단 얘기가 시작되면 마음에 있는 얘기를 터 놓기도 한다. 인도에서 온 나이가 좀 있어보이시는 아주머니는 어머니가 아프셔서 걱정이 많이 되던 중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보기로 결심 했다고 한다. 아주머니 본인도 나이가 지긋이 들어 보이셨기에 어머니의 연세가 어떻게 되시냐고 물어보니 90세가 넘으셨단다. 많은 이들이 생각하기에 90세가 넘으시면 장수한 것으로 생각을 하는데, 딸의 입장에선 사랑하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날이 가까와 오는 것이 몹시 슬펐을 것이다. 나 또한 사랑하는 어머니가 계시기에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아주머니와 심각한 이야기를 주고 받아서 그랬을까? 한참을 가도 이정표도 안 나오고 또 산티아고 순례객으로 보이는 사람을 너무 오랫동안 볼 수 없어서 이상하다 싶었다. 엉뚱한 길로 들어서는 바람에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오기를 몇번이나 하고, 철장이 쳐져 있는 고속도로에도 들어섰다가 그곳을 걸어서 빠져 나오는데도 생고생을 했다. 하도 답답하여 지나가는 차를 붙잡고 또 자전거를 탄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도 그쪽은 영어를 못하고 난 스페니쉬를 못하니 의사소통이 잘 안 됐다. 그래도 그쪽에서 “산티아고”라는 단어는 알아 듣고는 나에게 그냥 이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쭉 가면 된다고 하는 듯한 말을 한 것 같았다. 그 고속도로와 같은 도로는 산티아고로 언젠가는 도달케 할 줄은 몰라도, 그렇게 쌩쌩 달리는 차들 옆에서 매연을 맡으면서 산티아고 순례길과 전혀 다른 풍경의 길을 통해 종착지까지 가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어디서 이탈을 했는지 알아내어 다시 그 아름다운 산티아고 순례길로 돌아가야만 했다. 하루에 할당된 지정된 길만 걸어도 쉽지 않을 수 있는데, 거기에다 정도를 이탈하여 쓸데없는 발걸음을 너무도 많이 하여 많이 지쳤다. 그래서 아직 내가 제대로 된 길로 들어왔나 알 수가 없기도 하고 쉴 필요가 있어서 지나가던길에 카페에 들어갔다. 산티아고 순례객들은 본인이 정말 직접 걸어서 종착역까지 도착했다고 증명하기 위해서 날마다 지나 온 길에서 방문한 식당이나 카페 혹은 숙소에서 적어도두번의 도장을 순례객 여권에 찍어 와야 하는데, 내가 잠시 쉬다 갈 빵집에서 도장을 찍어 주는 것을 보니 다시 제 길로 들어선 것은 맞나보다 했다. 나중에 다른 순례객에게 물어보니 그가 지나 온 길과 내가 지나 온 길이 부분적으로 일치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이탈한 구간이 꽤 아름다운 구간이었던 것 같았다. 그부분이 좀 아까웠지만, 그래도 다시 제 길로 들어서게 된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정표가 자주 자주 등장하지만,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에 경치를 바꾸어 놓을 이정표를 놓칠 수 있으니 조심하시길…
날마다 숙소를 찾는 일이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울 수 있다. 나 또한 모든 숙소를 이미 정해 놓고 떠난 여행이 아니고, 그날마다 내가 도착하게 될 것 같은 도시에 있는 숙소들을 당일에 온라인에서 찾으면서 다녔다. 어떤 때는 이마저도 하지 못해서, 숙소에 자리가 없으면 어떻게하지 하고 조마조마하며 도착한 적도 있다. 유심칩을 구입하지 않고 떠난 여행이었기에, 와이파이를 제공하는 카페나 식당에 가야 마음이 편했다. 어차피 밥도 먹어야 하고 와이파이도 써야 했기에 이왕이면 와이파이를 제공하는 식당에 가는 것이 좋겠지만, 산티아고 순례길 중에는 배고플 때에 그냥 보이는데 들어가서 먹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어떤 때는 꽤 오랫동안 식당을 구경 못하게 되고 또 언제 먹을 수 있는 곳이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날도 배가 고파오던 중에 식당이 있을 법한 마을이 나와서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나 없나 찾던 중에 허름해 보이지만 먹을 곳을 파는 곳에 가게 되었다. 외딴곳이었고 너무 허름한 곳에 있었던 탓에 와이파이는 당연히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왠 걸? 이곳에도 와이파이가 있는 것이었다. 음식을 시키고 앉아서 그날 내가 도착할 예상인 도시의 숙소를 알아봤다. 많은 사람에게 가장 좋은 리뷰를 받은 숙소를 찾아 출발~
가는 길에 목이 말라서 과일 가게에 들렀다가 오렌지를 사서 목을 축이고 또 그 다음날 여행 때도 먹을 만큼 사서 이곳 저곳 구경하며 갔다. 스페인에서도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인데, 중국인들은 도무지 동양인이 살 것 같지 않은 곳에서도 어떤 비지니스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인들은 보편적으로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 사업을 하는 반면 중국인들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 좀 달라 보였다. 물론 중국인들도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규모 있는 도시들에서 차이나타운을 형성해서 사는 것이 대부분이기도 하다.
숙소에 드디어 도착을 했다. 주변에 공사를 하고 있어서 숙소를 찾는데 좀 애를 먹었다. 좋은 숙소가 있다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전혀 없는 곳 같아 보였기에 숙소에 빨리 들어가서 짐을 푸는 것이 가장 급선무 같았다. 이 도시에 머무는 이유는 순전히 숙소가 좋다는 것이 유일한 이유였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일찍 도착을 했는지,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얼마 안 있다가 아이를 학교에서 픽업해서 돌아오는 것으로 보이는 주인 분들이 등장했다. 내가 제일 먼저 도착한 순례객이었기에 일순위로 내가 묵게 될 방을 고를 수 있다는 특권을 받았다. 이곳은 그야말로 대저택이었다. 궁전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고급 대저택이었다. 현지인 누군가가 살던 곳에 오게 되어 이 동네를 좀더 가까이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내가 도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순례객들이 속속들이 도착을 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당연히 그날 걷다가 길에서 마주치고 지나쳤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곳에선 본인이 원하면 돈을 더 내고 저녁 식사를 순례객들과 같이 식사를 할 기회를 제공했는데, 주변에 식당도 없어 보여서 그냥 숙소에서 차려 준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저녁 식사 때 강위에 세워진 멋진 다리를 반대편에서 걷고 있던 친구들 3명과 제회하게 될 줄이야.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그리고 독일인. 난 이들이 당연히 친구 사이인 줄 알았는데, 이 길을 걷다가 서로 알게된 사이라고 한다. 프랑스 남자 분이 내 옆에 앉아서 딱히 할 말도 없는 중에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 얘기를 하다가, 프랑스 보르도 지방 와인의 품질에 대해 얘기하던 중 그 옆에 있던 이탈리아인 여자는 이탈리아 와인이 세계 최고라며 언성을 높였다. 오스트리아에서 안식년으로 그곳에 온 오스트리아인 교수는 그 집에 모여 있는 젊은이들을 보고 흥이 났는지, 그 숙소에서 판매하고 있던 상대적으로 비싼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 한병씩을 10명 정도 되는 우리를 위해 구입하였다.
이곳 주인은 멕시코 출신이었는데, 우리가 오랜만에 맞이한 단체 손님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신이나서 음식을 만들고 우리에게 대접을 하고 있었다. Caesar Salad를 미국에서 많이 먹어봤는데 지금까지 맛본 것 중에 최고라고 하니, 어깨가 으쓱하여서 Caesar Salad는 원래 미국 것이 아니고 멕시코 Tijuana에서 부터 유래했다는 썰을 풀어놓았다. Salad의 이름을 봐서는 일이가 있는 말이었지만, 알길은 없었다. 그는 왜 멕시코시티라는 대도시 출신이면서 이 작고 외딴 타국에 와서 살게 된 것일까? 물론 이미 스페니쉬를 할 수 있으니, 적응의 난의도 자체는 다른 외국인들과는 달랐으리라. 오스트리아 출신의 교수와 독일인들은 그 저녁식사 자리에서 굳이 독일말로 대화를 나눴다. 그들이 하는 말을 알길이 없던 프랑스, 이탈리아, 우크라이나 출신과 나는 영어로 서로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일주일 동안의 짧은 산티아고 순례 여행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스페니쉬풍(?)의 대저택에서 가족과 같이 식탁에 둘러 앉아서 세계 곳곳에서 온 처음 본 사람들끼리 먹는 저녁만 봐도 유추가 가능해지겠지만, 모두가 다 다른 사연과 목적을 가지고 걷게 될 산티아고길 여정은 색다른 경험과 가장 기억에 남을 추억들을 걷는 이들에게 많이 장만해 줄 것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