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 스페인에서의 마지막날, 스페인에서만 3주 가량을 보내게 될 줄은 처음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을 땐 상상하지 못했다. 그만큼 스페인에는 볼 거리가 많았다. 일생을 다 바쳐도 스페인을 다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말이 그들끼리 하는 말 중에 있다고 한다. 자신들의 나라에 대한 긍지가 엿보이는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밖에 나가니 또 다시 새로운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미 어제 다 본 풍경이었지만,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내 앞에 펼쳐진 중세시대와도 같은 느낌의 동네는 묘한 기분을 들게 해 주었다. 동네 광장에 나가니 이른 아침이라서 사람들이 듬성듬성 보였고, 공사와 같은 일들은 주로 아침 일찍부터 하기에 아주 고요한 아침은 아니었다.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의 걷기여행이 끝이 났지 내 여행 자체가 끝난 것이 아니어서 앞으로 더 많이 걸을 것에 대비하여 스페인 우체국에 갔다. 그간 끌고 다녔던 물건들을 줄이고 줄여서 최소한의 필요한 물건만 가지고 여행을 하고 싶어서 였다.
독일 본 출신 크리스가 받지 않았던 책 ‘천로역정’은 베를린 출신 친구 줄리에게 주었다. 왠지 좋은 책은 쓰레기통에 버리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내가 읽고 좋았던 책은 누군가에게 전해 주려고 하는 편이다. 이미 책은 산티아고 순례길 시작하기도 전에 다 읽은 후였지만, 누군가에게 전해 주겠다는 생각에 가방에 넣어 둔 채 여행을 지속했었다. 당연히 책의 임자를 빨리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 달리,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에서 만큼은 아무리 좋은 공짜 책도 인기가 없었다. 결국에는 산티아고에 다 도착하고 나서야 책의 임자가 나타났다. 이제 더이상 무거운 가방을 끌고 걸어다닐 필요가 없으니 흔쾌히 받을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나의 물건을 집이 있는 미국에 보내야 했다. 아침 일찍에 가야 긴 줄을 피할 수 있겠다 싶어서 그날 가장 중요한 임무 중에 하나인 짐 부치는 일을 하러 우체국에 갔다. 이전에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Moka Pot을 미국으로 보낸 적이 있는데, 토요일 그 황금같은 아침시간에 영어를 잘 하지 못하시는 우체국 아저씨와 짐을 미국으로 부치는 일로 씨름을 한 경험이 있어서 또 그러면 어떻게 하나 했다. 다행히도 이곳 우체국 아저씨는 영어를 잘 했다. 어느 우체국이나 물건을 보낼 때에 무게로 가격을 책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꼭 보내야 할 물건들만 가지고 갔다. 그런데 가지고 간 물건 중에서도 좀 빼내야 하는 일이 생겼다. 무게가 500그램을 초과하면 가격이 급격히 치솟앗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내가 가지고 간 물건이 500그램을 조금 초과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서 또 어떤 물건을 보내고 어떤 물건을 다시 가방에 넣어야 하나 잠시 고민을 했다. 생각해 볼 필요도 없던 물건들은 내가 그때까지 여행을 하다가 가지고 있던 기념품들과 산티아고 순례길 여권, 증명서, 줄리에게서 받은 목걸이 등등이었다. 결정을 빨리 내리고 우체국을 나섰다. 오후 2시경 산티아고를 출발하여 스위스 제네바로 향하는 비행기를 잡아 타야 하는데, 막간을 이용해서 산티아고를 더 걷고 브런치도 먹고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불가피하지 않을 경우 보통 공항에서 밥을 먹기보다는 공항 가기 전에 밥을 먹는 것을 선호한다. 한끼라도 더 그곳 사람들이 애용하는 식당에서 먹어야 그 곳에 대해 한가지라도 더 배울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또 다른 이유는 공항에는 선택 사항이 별로 없을 때가 있고 어떤 식당들이 있는지, 맛이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른다. 어떨 때는 맛은 없으면서 가격은 공항 밖에 비해서 엄청 비싸게 받기도 한다.
인기있는 식당에 식사시간에 도착을 하면 늘 예상해야 하는 것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기다리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내가 찾아간 식당에 도착해서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으로 부터 기다려야 한다고 들을 때엔 꼭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그이유는 그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때로는 내겐 ‘이집 정말 맛있어요’라고 들려 올 때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식당에 가면은 일단 항상 그곳에서 일하는 분에게 가장 인기있는 메뉴가 뭐냐고 물어보는 편이다. 가장 맛있다고 추천해 준 음식과 내가 볼 때 가장 건강식일 것 같은 음식 하나씩을 시켰다. 아침 첫 식사였기에 그래도 좀 건강한 식사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날 첫 식사였기에 맛이 있었는지 몰라도 정말 너무 맛이 있어서 다시 오고 싶어지는 곳이었다. 과일과 야체와 견과류가 들어간 셀러드 또한 일품이었다. Carrilana라고 하는 곳인데, 산티아고에 간다면 브런치 먹기에 추천할만한 곳이다.
Santiago De Compostela라는 곳은 의외로 대도시였다. 보통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을 생각하면 그 걷는 여정과 지나오는 도시와 길들만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이 도착지인 산티아고라는 곳은 굉장히 매력적인 도시였다. 만약 다시 한번 산티아고 순례길에 가게 된다면 도착지인 이 도시에서 시간을 더 할애하여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도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왔는데, 사실 이 도시는 스페인 서북부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라고 한다. 그렇게 이 도시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던 중에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알아본 후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정류장엔 이미 그 지역사람들과 여행객들로 붐볐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라서 그런지 이민 가방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고 당연히 산티아고 순례객들도 여기저기 섞여 있었다. 유럽 대부분의 공용화폐인 유로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 스위스로 가는 길이기도 했고, 요즘엔 보통 크레딧카드로 결제를 하기에 수중에 가지고 있던 유로는 얼마 되지 않은 것이 좀 마음에 걸렸다. 혹시 내가 가지고 있는 얼마남지 않은 유로 동전이 충분치 않으면 어떻게 하지? 혹시 카드를 받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이렇게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이미 스페인 최남단 Tarifa라는 곳에서 세비야로 이동을 할 때에 아침 첫차를 잡아 탈 때가 생각나서다. 그날 세비야로 가는 유일한 버스였는지 아니면 그것을 놓치면 다음 버스는 저녁 늦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버스였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안난다. 수중에 버스비를 낼 만큼의 유로가 없던 내게 버스운전사는 카드는 안 받는다며 내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내겐 미국 100달러짜리 지폐만 있었는데, 기어코 유로만 내야한다고 하는 버스아저씨가 야속했지만 그분도 자신의 일에 충실한 것일 뿐이었기에 원망을 할 수 없었다. 버스가 떠나는 시간이 되기 전까지 그 버스에 탄 사람들에게 내 사정을 얘기하고 누가 20유로 정도 되는 버스비를 잠시 빌려 주면 다음 ATM이나 환전소가 나타나면 돈을 주겠다고도 해 보기도 하고, 내 미국 지폐 100달러를 유로로 환전해 줄 사람들을 찾아 봤는데 아무도 없었다. 세비야에 이미 호텔도 예약을 해 놓은 상황이었기에 그날 도착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마 버스비만큼의 유로를 주면 내 미국 100달러 지폐를 넘겨 줄 마음도 갖고 있던 차에, Matthew라고 하는 이탈리아인이 내 버스비를 내 주겠다고 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자랐지만, 아버지는 미국인이었기에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자신도 그런 황당한 일들을 많이 겪어 보았노라면서… 마침 목적지가 같았기에 세비야 ATM에서 돈을 찾아 감사의 표시로 버스비보다 더 많은 금액을 주었더니 고마워하는 눈치였다. 내가 ATM을 찾지 못해 좀 지체가 되었었는데, 나를 기다리던 중 내가 돈을 갚지 않고 어디로 도망갔나하며 별의별 생각을 다 한 모양이었다. 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기에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고 얘기를 해주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한명이었던 Matthew, 그의 이름을 예를 들어 그에게 예수님을 전하였다. 사실 그날 버스에서 내 옆에 타 있던 한 미국인이 한 20유로가 있었나 보다. Harvard를 졸업하고 배낭여행 중이던 그녀는 그때 당시 미국 100달러 지폐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기에, 내가 꼭 환전해야 Matthew에게 돈을 갚을 수 있는 것을 알고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터무니 없는 액수의 유로로 내 100달러를 받을 수 있을까하는 눈치였다. 도착지에서 ATM을 빨리 찾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어서, 왠만하면 버스내에 있는 승객들을 통해 환전을 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20유로 정도의 돈으로 100달러 지폐를 그녀에게 주기는 좀 그랬다. 여담이 좀 길어졌는데, 이 산티아고에서 공항으로 가는 버스는 다행히도 굉장히 저렴해서 내가 가지고 있던 남은 유로 동전으로도 충분히 공항까지 갈 수 있게 되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줄을 서 있는데, 어떤 중국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 승무원에게 붙잡혀 가방 사이즈를 점검 받는 것이 보였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렇게 가방도 커 보이지 않았는데, 그냥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인 대유행병이 한참이던 때와 거의 동일한 시점부터 불어닥친 동양인에 대한 거부감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때였기에 더 그렇게 생각한 것일수도 있다. 비행기에 탑승하러 줄을 길게 서있는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 뒤에 없었던 그 여자분이 어찌된 영문인지 내 바로 뒤에 서 있었다. 동양인들끼리는 보통 그 사람이 어느 나라 출신일 것이라는 것을 대충 알 수 있는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중국인인줄 알고 중국말로 인사를 했는데, 알고 보니 일본인. 그사람이 기분 나빠할 시차를 주지 않고 일본말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더니 이 사람의 눈이 커진다. 체코에서 유학 중에 산티아고 순례길에 여행을 왔다는 쇼코는 중국말로 인사를 하더니 일본말로 자신과 대화를 하는 한국계 미국인인 나를 어떤 천재를 만난것처럼 놀라워 했다.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하다 체코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학생답게 영어를 잘했다. 나를 어떤 학자쯤 되는 사람으로 여기는 듯 어디에서 가르치냐고 물어왔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자신에게 책을 하나 소개해 달라고 했다. 내가 소개하는 책은 반드시 읽겠노라고… 그런 질문을 한 쇼코가 참 감사했다. 원래 쇼코와 같은 일본인들을 만나면 꼭 예수님을 전해 주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느헤미야와 같이 마음속으로 잠시 기도한 후, 성경책을 읽으라고 했다. 성경책은 쇼코 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이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책이고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소개해 주는 책은 반드시 읽겠다고 약속을 하고 온라인에서 성경책을 고르고 있다는 쇼코는 성경책을 다 읽었을지 궁금하다.